벌써 '강석훈의 산은' 떠올리는 시장…박상진 회장이 당면한 과제는?
입력 26.01.16 07:00
취재노트
국감·업무보고 지나며 드러난 '존재감' 질문
내부 출신 첫 회장에도 노사 갈등 먼저 부각
'현안의 연속' 강석훈 체제와 대비된단 평
HMM·KDB생명·국민성장펀드…당면한 과제들
  • 산업은행 안팎에서는 요즘 박상진 회장 체제를 두고 조심스러운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성과를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전제가 먼저 붙지만, '강석훈 시절의 산은과 대비된다'는 말이 벌써부터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강석훈 전 회장의 산은에 대한 평가조차 '복합적'인 상황에서, '박상진의 산은'에 대한 기대감은 그 때보다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내부 출신 첫 회장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난국을 돌파할 '리더십'에 대해 아직 물음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최근 국정감사와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한층 또렷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 회장은 산업은행의 주요 현안과 관련한 질의에 나섰지만, 전반적인 메시지 관리나 준비 정도 측면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지 못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질의 과정에서는 내부 업무 전반에 대한 숙지가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통상 새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된 인사에게는 일정한 관망 기류가 형성되지만, 이번 국감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질타가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산은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첫 대외 무대에서 아직 박상진 체제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 업무보고 국면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뒤따랐다. 최근 업무보고에서 박 회장은 별다른 질의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열심히 하라"는 취지의 당부가 전부였는데, 직전 순서였던 기업은행이 노조 이슈와 관련해 대통령과 비교적 긴 담화를 이어갔던 것과 대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성장펀드 조성, 첨단전략산업 지원 등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구체화되며 산업은행의 부담과 책임은 오히려 커졌지만, 정작 중요한 자리에서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박 회장이 최근 개인 스피치 전문가를 붙여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보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정책금융기관 수장으로서 메시지 전달력과 대외 대응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감과 업무보고를 계기로 소통 방식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조직 내부 이슈도 조용하지만은 않다. 내부 출신 회장이라는 점에서 노사 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일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인사를 둘러싼 노조와의 갈등이 성과보다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회장이 수석부행장 인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혁신성장금융부문장으로 거론되던 김사남 벤처금융본부장 인선은 철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흐름은 '내부 출신 회장이면 조직 장악이 자연스럽다'는 기대와는 다른 장면이다. 산은 내부에서도 "상징성과 실제 리더십은 결국 다른 문제"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 지점에서 시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전임 강석훈 회장 시절로 돌아간다는 평가다. 강석훈 체제의 산업은행은 늘 현안의 중심에 있었다. HMM 매각 추진과 무산, KDB생명 매각 시도, 대형 기업 구조조정 국면에서의 역할, 부산 이전 논란까지 산은이 직접 답해야 할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성과를 놓고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산은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만큼은 분명히 보였던 시기라는 데에는 비교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박상진 회장이 마주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HMM 매각은 여전히 산은의 최대 숙제로 남아 있고, KDB생명 역시 10년 넘게 매각에 실패하며 부담 자산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성장펀드는 향후 수년간 수십조원 규모로 집행될 예정이어서, 산업은행은 다시 정책금융의 실행 창구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매각과 투자, 정책 집행이라는 서로 다른 과제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다.

    금융권에서는 "지금의 조용한 국면은 유예 기간에 가깝다"는 말도 나온다. 대형 매각이나 구조조정 이슈가 본격화하는 순간, 박상진 체제의 의사결정 방식과 메시지 관리, 조직 장악력이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강석훈 시절의 산은은 늘 시험을 받고 있었고, 박상진의 산은은 이제 시험지를 받아든 단계"라며 "문제는 그 시험이 생각보다 빨리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비교적 잔잔하다. 다만 산업은행이 늘 그래왔듯, 이 조용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박상진 회장에게 남은 과제는 바로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