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직접 담기' 시작한 증권사...운용사 '먹을거리 고민' 커진다
입력 26.01.28 07:00
발행어음·IMA 확대에 '셀러'에서 '운용주체'로
증권사 우량 딜 내부화에 운용사 수익성 압박
코벤펀드 등 '목적성 자금'과의 경쟁도 부담으로
  • 발행어음과 IMA(종합투자계좌) 확산이 국내 자본시장 딜 배분 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증권사가 메자닌·구조화·프리IPO 등 기업금융 딜을 소싱해 자산운용사에 셀다운하는 '셀러' 역할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증권사 스스로가 딜을 직접 담는 '운용 주체'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발행어음과 IMA로 조달한 자금의 일정 비율을 국내 모험자본으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면서, 증권사 입장에서는 팔 물량보다 담아야 할 물량이 우선순위가 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 같은 변화는 자산운용사 수익모델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전통적으로 운용사들은 증권사 IB가 주선한 메자닌과 하이일드, 프로젝트성 크레딧 등을 받아 담아 AUM(운용규모)을 늘리고 운용보수와 성과보수를 쌓아왔다. 

    그러나 증권사 자기계정 운용 비중이 커질수록 우량 물량이 내부로 흡수되고, 운용사들은 상대적으로 조건이 불리한 딜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구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초대형 IB를 대상으로 발행어음과 IMA 조달액의 일정 비율을 국내 모험자본에 투자하도록 하고, 해당 비중을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모험자본 범위에는 중소·벤처기업 자금공급뿐 아니라 코스닥벤처펀드와 하이일드펀드, 일부 A등급 이하 채무증권 등도 포함된다. 현장에서는 이 제도 설계 자체가 증권사의 행동을 바꾸는 핵심 요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임원은 "예전에는 딜을 따오면 운용사에 파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우리가 직접 담아야 할 자금이 먼저 쌓여 있다"며 "좋은 딜을 확보해도 내부 북(book)을 채우고 나면 외부에 나눠줄 여력이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다만 증권사의 자기계정 운용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최근 변화의 '강도'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증권사들은 과거에도 자체 북을 활용해 메자닌이나 구조화 딜 일부를 직접 운용해왔지만, 발행어음 사업자 확대로 내부 운용이 선택이 아닌 전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일부 딜을 골라 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제도와 상품 구조상 내부 운용을 염두에 두고 딜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IMA 출범 이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IMA 상품을 출시하면서, 증권사가 리테일 자금을 직접 모아 기업금융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가 본격화됐다. IMA는 원금 지급 의무를 증권사가 부담하는 실적배당형 상품인 만큼, 단순 판매를 넘어 운용성과와 리스크 관리에 대한 책임도 함께 커진다.

    업계에서는 IMA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 늘어날수록 증권사 내부에서 소화해야 할 운용 물량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이는 모험자본 의무 이행과 맞물려 자기계정 운용 경쟁을 한층 치열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운용사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딜 자체가 사라지기보다는 우량 물량이 먼저 시장에 나오지 않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 내부 운용 수요가 커지면 같은 딜을 두고도 내부 배정과 외부 셀다운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운용사들은 AUM 성장 둔화와 함께 프라이싱 압박이라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공급이 제한된 구간에서 경쟁이 심화되면 쿠폰과 할인율, 콜옵션 조건 등이 악화되며 기대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닥벤처펀드 등 목적성 자금의 존재도 운용사 수익성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도적 요건 충족이나 공모주 우선배정 같은 혜택이 결합된 자금은 수익률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 메자닌 시장의 프라이싱을 누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들은 이제 증권사 자기계정과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가격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코벤펀드와 같은 자금과도 동시에 경쟁해야 하는 구조에 놓였다"라고 말했다.

    운용사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모신용과 직접대출, 특정 섹터에 특화된 크레딧 전략을 통해 직접 딜 소싱을 늘리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상장사 커버리지와 구조화, 북빌딩과 배분 역량을 동시에 보유한 증권사 IB 모델을 운용사가 그대로 따라 하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모험자본 의무비율이 올해부터 본격 적용되면서, 딜을 둘러싼 힘의 균형은 이미 증권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증권사들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자기계정 운용을 확대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용사들이 설 자리가 얼마나 남을지는 더 이상 중장기 과제가 아니라 당장 올해 실적으로 확인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