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도 모회사 상장됐다면 '일단 스톱'…연간 계획 어그러진 IPO 업계
입력 26.01.28 14:57
에식스솔루션즈 철회에 상장 모회사 둔 기업들 '줄줄이 스톱'
거래소 가이드라인 공백 속 혼선…VC·증권사 모두 '긴장'
대어급 IPO 축소 우려…코스닥 중심 전략으로 밀리는 증권사들
  • LS에식스솔루션즈 상장 철회 여파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증권사 기업공개(IPO) 부서는 물론, 한국거래소와 벤처캐피탈(VC) 업계도 연간 계획을 벌써부터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SK·HD현대·한화 등 대기업 계열사부터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던 중소·벤처기업, IPO를 투자금 회수(엑시트) 창구로 삼아온 VC 등 투자자들까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는 지적이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재 중복상장 논란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의 상장 심사는 사실상 일제히 중단된 상태다. 대기업 계열사는 물론, 상장 모회사를 둔 중소벤처기업들까지 일시 보류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초 거래소는 올해 1분기 중 중복상장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물적분할, 신규 법인 설립, 법인 인수 등 다양한 상장 유형을 정리하고, 모회사 주주 보호를 위한 판단 기준을 일정 수준 문서화하는 작업이었다. 심사의 재량 폭을 줄이는 것은 거래소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증권업계에서는 기준이 명문화될 경우 심사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LS에식스솔루션즈 사례를 직접 거론하며 제동을 걸자, 심사 주체인 거래소도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다. 대통령 발언 이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중복상장을 제한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하고 지수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력 있는 기업을 해외가 아닌 국내 자본시장에 유치하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모회사가 상장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회사 상장 추진 사례를 일괄적으로 중복상장으로 묶을 경우, 실적이나 성장성이 충분한 기업들이 해외 상장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현재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면, 상당수가 바이오 기업이나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하는 적자 기업들이다.

    최근 주관사 선정을 마치고 상장 준비에 착수했던 HD현대로보틱스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당초 26일 주관사 킥오프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LS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 철회 이후 미팅이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HD현대로보틱스는 2020년 5월 HD현대(당시 현대중공업지주)에서 물적분할돼 설립된 기업으로, 전형적인 '쪼개기 상장' 사례로 분류된다. LS에식스솔루션즈 사례가 제동이 걸리면서 상장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청구를 앞두고 있던 SK에코플랜트도 상장 대신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매입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SK에코플랜트는 3분기 기준 SK㈜가 지분 64.69%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법인을 인수한 LS에식스솔루션즈마저 상장이 중단되면서, 모회사가 이미 상장된 SK에코플랜트의 IPO 역시 불투명해졌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 계열사뿐 아니라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던 중소기업들도 줄줄이 영향을 받고 있다. 디티에스, 한컴인스페이스, 덕산넵코어스 등 모회사가 상장돼 있는 기업들이 현재 심사가 중단된 상태다. 

    이들 기업은 최근 인사를 마친 거래소에서 심사 담당자가 교체되는 시점과 맞물려 심사 자체가 멈췄다는 전언이다. 덕산넵코어스의 최대주주는 코스닥 상장사 덕산하이메탈(63%)이고, 디티에스의 최대주주는 다산네트웍스(38%)다. 한컴인스페이스 역시 코스닥 상장사 한글과컴퓨터가 지분 28%를 보유하고 있다.

    중복상장 논란의 여파는 VC 등 재무적투자자들에게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심사가 중단된 기업들 상당수가 프리IPO 단계에서 이미 FI 투자를 유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M&A 시장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 환경에서 IPO는 사실상 핵심 회수 수단인데, 그 출구가 막혔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VC 관계자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의 상당수는 IPO를 전제로 이뤄진다"며 "LS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이 멈춘 이후 심사를 받던 기업들까지 연쇄적으로 멈춰섰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물적분할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있었지만, 해외 법인을 인수한 에식스솔루션즈까지 제동이 걸리면서 사실상 모자회사 동시 상장 전반으로 범위가 확대된 느낌"이라며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중복상장 논란으로 '대어'급 IPO가 사실상 자취를 감췄던 만큼, 증권사 IPO 부서 내부에서도 힘이 빠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기업 계열사 상장이 막히면서 기술특례상장 등 코스닥 중심의 중소형 딜을 유치하는 데 사실상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몸값이 높은 기업일수록 증권사에 안겨주는 수수료 규모도 큰 만큼, 업계의 아쉬움은 적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LS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이 무산될 경우 다른 대기업 계열사들도 연쇄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다"며 "올해 역시 대어 상장이 어렵다면, IPO 부서로서는 코스닥 상장 유치에 더 힘을 쏟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