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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니어하우징 시장을 둘러싼 자본의 구도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고령화 심화와 함께 주거와 돌봄을 결합한 노인 주거시설이 새로운 부동산 섹터로 부상하자,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선제적으로 한국 시장에 발을 들이는 모양새다.
반면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수익성 불확실성과 사회적 여론 부담을 이유로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어, 임대주택 시장 초입 국면과 유사한 장면이 재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부동산업계는 시니어하우징 사업을 임대주택 사업과 비슷하게 보고 있다. 장기 거주를 전제로 한 안정적 현금흐름 자산인데다, 정책과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건스탠리나 KKR 등 글로벌 사모펀드는 이미 멀티패밀리·학생주거·시니어하우징을 하나의 대체투자 포트폴리오로 묶어 운용하는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서울시가 주관하는 서초소방학교 부지 시니어하우징 개발 사업이다. 이는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인근 옛 서초소방학교·우면119안전센터 부지를 활용해 중산층 대상 시니어주택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정부 보증 성격이 강한 공공 참여 사업이다. 해당 사업에는 사전 접수 단계에서만 54곳이 몰렸고, 현재 8개 컨소시엄이 본입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케어닥은 한국투자증권, 행림종합건축사무소, 뉴컨AMC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고 우미건설 컨소시엄과 대명소노그룹 컨소시엄도 입찰에 뛰어들었다. 이외에도 국내 금융사 계열 운용사들과 해외자본과 협업한 투자자들이 복수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지는 강남권 도심 입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지만 사업 구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강남권 시니어하우징은 높은 보증금을 전제로 한 하이엔드 사업일 경우에야 수익성이 뒷받침되는데, 서울시 주도 사업인 만큼 높은 비용은 정책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서울시는 이번 사업에서 고급화보다는 중산층 타깃을 명확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강남에서 중산층 시니어하우징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수익률이 높을 수 없는 구조"라며 "그럼에도 트랙레코드를 쌓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딜로 인식돼 대기업들의 관심이 쏠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건설사와 시행사들은 단기 수익성보다는 '시장 초입 선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실제로 일부 컨소시엄에서는 사업성 검토 단계에서 내부 수익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입찰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행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한 딜이라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시니어하우징 시장에서 이름을 올리기 위한 입장권에 가깝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자본의 움직임은 공격적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와 워버그핀커스는 한국 시니어하우징 시장을 차세대 대체투자처로 보고 선제적으로 진입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인베스코는 국내에서 약 1000억원 규모의 초기 투자금을 집행한 상태이며, 중장기적으로는 5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시니어하우징 자산을 포트폴리오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워버그핀커스 역시 국내 시니어하우징 시장을 장기 성장 섹터로 분류하고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직접 개발에 나서기보다는 국내 시행사·운용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프로젝트 단위 투자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 운용을 전제로 한 캐시플로우형 자산 축적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사모펀드는 자기 나라에서 이미 해봤던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라며 "임대료 기반 현금흐름과 운영 안정화를 전제로 자산가치를 키우는 방식에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다. 시니어하우징은 장기 안정 자산이라는 점에서 연기금과 보험사에 적합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사회적 리스크가 크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노인복지 사업으로 돈을 번다'는 여론 부담은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일수록 치명적이다. 여기에 인건비 상승과 운영비 부담이 커지면서 기대 수익률도 낮아지고 있다.
특히 요양 서비스가 결합된 복합형 시니어하우징의 경우 인력 문제가 핵심 변수다. 지난해부터 장기요양 수가 인상과 함께 요양보호사 배치 기준이 강화되면서, 직접적인 규제 대상이 아닌 시니어하우징 운영사에도 비용 압박이 전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료 수익만으로 이를 상쇄하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공백을 해외자본이 파고들고 있다.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주저하는 사이 글로벌 운용사들이 초기 자산을 확보하고 시장 표준을 만들어 가는 구조다. 이는 임대주택 시장에서도 반복됐던 장면이다. 초기에는 해외 자본이 먼저 들어와 포트폴리오를 구축했고, 이후에야 국내 기관이 뒤따라 진입했다.
금융지주 계열사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KB금융은 자체 운영사를 앞세워 시니어하우징과 요양시설을 동시에 운영하며 비교적 앞서 나가고 있다. 신한금융은 분당 데이케어센터를 시작으로 하남·은평·해운대 등 복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다만 이들 역시 금융 상품과의 연계, 그룹 차원의 전략 사업이라는 성격이 강해 순수 투자 관점에서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선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시니어하우징은 부지를 확보했다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 운영을 전제로 한 산업"이라며 "국내 기업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따라붙느냐에 따라 시장 주도권이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자본 먼저 진입한 시니어하우징 시장
국내 기관은 수익성·여론 부담에 관망세
서초 개발사업에 수십곳 몰리며 경쟁 격화
제도 공백 속 민간 주도 모델 시험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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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1월 3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