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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에서 삼성전자의 회사채 시장 복귀설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다만 기류는 전과 다르다. 과거에는 메모리반도체 업황 침체기에 따른 유동성 확보가 주된 이유였다. 올해는 정책자금이 본격적으로 풀리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자금 소화를 원하는 곳이 늘어났다는 논리다.
이번 복귀설은 삼성전자의 자금 사정 변화보다는 자금을 굴려야 하는 쪽의 사정에서 대두됐다. 산업은행의 국민성장펀드, 기획재정부의 한국형 국부펀드 등 올해에만 역대 최대 규모인 252조원의 정책자금이 공급된다. 대규모 대기 자금이 쌓이면서 정책금융 입장에서 '어디에 쓸 것인가'가 더 큰 고민으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신용도 최상위 기업으로 향한다. 초우량 기업은 이런 국면에서 가장 편한 선택지다. 수익성은 높지 않더라도 손실 가능성이 낮고, 정책자금 집행의 명분을 설명하기도 수월하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금 공급자들이 삼성전자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며 "회사채든 다른 방식이든 무조건 조달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먼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매년 도는 이야기지만 삼성전자가 회사채 시장에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며 "(삼성전자가) 해외에 투자할 수도 있고, 실제로 인공지능(AI) 관련 국내 반도체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인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외형적으로 보면 명분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시설투자 금액은 DS부문 47조5000억원, SDC 2조8000억원으로 총 52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당초 예상 규모인 47조4000억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메모리 부문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를 위한 선단 공정 전환 투자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투자 규모가 자연스럽게 늘었다. 올해 세부적 투자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메모리반도체 시황을 고려해 대규모 시설투자(CAPEX) 증가가 예상된다.
2년 전과 환경은 달라졌지만, 실제 발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현금흐름만으로도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구조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회사채 발행이 현실화할 경우의 파장을 더 먼저 따지는 분위기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실제로 회사채 시장을 통해 발행에 나설 경우 10조원 안팎의 대규모 물량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AAA급 물량이 시장 수급을 빠르게 흡수하는 구축효과로 다른 발행사들의 조달 여건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분기에만 20조원을 벌어들이는데 굳이 회사채를 조달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4년에도 여러 조달 방식을 검토했으나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장기간 발행 공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도 회사채 발행을 실무적으로 경험한 조직과 인력이 많지 않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원화 회사채를 발행한 것은 2001년이 마지막이며, 글로벌본드 역시 2012년 이후 발행 이력이 없다.
무엇보다 대체 조달 수단은 충분하다. 정책자금을 활용한 저리 대출, 은행권 차입 등 회사채 외 선택지가 다양하다. 굳이 금리 부담을 감수하며 공모 회사채 시장에 나설 유인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취재노트
올해 252조 역대 최대 규모 정책자금 공급
초우량물 찾는 자금들, 결론은 또 삼성전자
정책자금 활용 저리 대출…대체 수단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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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2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