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지갑 사정 걱정해야 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입력 26.02.10 07:00
AI에 흔들리는 SW 산업…美 IGV ETF -20%
메모리 등 HW 필수 인프라는 정반대 흐름
시장 프리미엄 SW에서 HW로 이동한단 평
메모리 잘 나가겠지만…고객 지불능력 관건
  • 인공지능(AI)이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의 밸류에이션 논리를 뒤집어 놓고 있다. AI가 업데이트를 거듭할 때마다 휘청거리는 SW 기업의 가치는 전처럼 후하게 쳐주기 어렵고, 필수 인프라로 등극한 메모리 반도체나 에너지 산업엔 프리미엄(할증)이 붙는 식이다. 

    AI 최전선에 있는 빅테크들의 비용구조에 대한 검증도 계속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엔 고객사 지불능력 문제이다 보니 남의 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투자업계에선 미국 SW 대표기업들을 담은 상장지수펀드(ETF)인 IGV 주가 하락 문제가 뜨겁다. IGV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0% 안팎 하락했다. 글로벌 1위 CRM 기업인 세일즈포스를 시작으로 어도비, 서비스나우, 오라클 등 IGV 내 대표 종목 주가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적 발표 이후 지난 5거래일 동안 14%가량 하락했다.  

    'SW 산업이 붕괴된다(SW Meltdown)'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AI 서비스가 고도화하면서 SW 산업이 구축해온 해자가 하나 둘 해체되고 있다는 진단으로 풀이된다. ▲그간 축적한 구독모델 기반 록인(Lock-in) 생태계는 소수 범용 AI에 잠식당하고, ▲생존을 위해선 제조업 못지 않은 설비투자(CAPEX) 경쟁에 나서야 하니 특별한 취급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HW를 대표하는 반도체 산업에선 정반대 현상이 펼쳐진다. 작년 9월 IGV 주가가 정점을 찍고 30%가량 하락하는 동안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20% 이상 상승했다. 병목 심화로 슈퍼사이클(초호황)에 들어간 D램 공급사로 좁혀보면 차이는 더 극명하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140%, 마이크론은 130%, 삼성전자는 94% 이상 주가가 올랐다. 

  • 상반된 흐름을 단기 실적이나 수급 변화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SaaS 기업 멀티플이 10년 내 최저 수준으로 빠지고 있는 거라 단순히 개별 기업 실적이나 금리 같은 매크로 환경보다는 SW 산업에 붙던 프리미엄이 빠지는 과정으로 보인다"라며 "AI에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면 주가매출비율(PSR)과 같은 매출액 기반 밸류에이션을 적용해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메모리 반도체 공급사 가치를 산정할 때 주가순자산비율(PBR) 대신 주가순익비율(PER)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실적 가시성이 높아진 만큼 자산 규모보다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느냐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SW 기업들은 AI 서비스가 고도화할 때마다 가격 체계나 과금 단위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 반면, 반도체와 같은 제조업은 단기에 공급을 늘리기 어려워 내후년까지 생산 여력이 빠듯한 상황으로 전해진다. 가격을 전가할 수 있는 HW 쪽으로 시장의 프리미엄이 이동하는 배경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전력기기, 에너지까지 병목이 발생하는 각 영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격 결정력을 쥐게 된 HW 산업이 중장기 현금흐름이나 성장성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입을 모아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자 우위 시장"이라 선언하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필수 인프라 가격이 치솟는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1년 동안에만 D램 제품군에서 2~5배 안팎의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동시에 전방 고객사들의 지불 능력이 언제까지 버텨줄까 하는 걱정도 부상했다. SW 기업의 지갑사정이 나빠진다는 건 반도체를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SW 빅테크 주가 조정이 반도체 업종 변동성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메모리 수요의 최종 부담 주체가 AI를 도입하는 빅테크라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 4일 삼성전자 주가는 10% 이상 상승하며 사상 처음으로 보통주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이날 미국 마이크론 주가가 9% 이상 하락하자 5일 들어 SK하이닉스와 함께 5% 이상 하락세를 보였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내년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물량이 완판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양사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존 전망에 큰 변화는 없다"라며 "그러나 최대 큰손인 빅테크들이나 세트 공급사 등이 메모리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느냐,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검증도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