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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은 이번에도(?) 자본시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2조4000억원 (이후 1조8000억원으로 줄였다) 규모의 유상증자는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추진방식과 과정은 서툴렀다"라는 평가를 남겼다. 작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증자, 그리고 한화 우선주 상장폐지 과정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회사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시장은 불신한다.
도대체 한화는 뭘 그리 잘못하고 있는 걸까
"과정도 적법하고, 로드맵도 발표됐고"
한화솔루션 증자가 주주총회 이틀 뒤에 발표된 게 논란이 됐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상 (제174조 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 금지) 유증여부를 특정 주주들에게 미리 알리면 되레 그게 불법이다. 주총에서 신규 사외이사 2명(송광호ㆍ배성호)을 선임, 이틀 뒤 열릴 이사회에서 유증을 결정하도록 했으니 제대로 된 검토가 가능했겠느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사회 결의 전 미리 신규 선임 예정후보들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설명회도 미리 다 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과정은 다 적법하다. 그리고 향후 로드맵도 발표됐다.
"차세대 태양광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에 집중투자하겠다" "2026년까지 기가와트급 양산라인을 갖추겠다" "기존 생산라인을 고효율·고출력의 TOPCon(터널 산화물 패시베이션 접촉) 공정으로 전환하겠다" 등. 차입금 상환에서도 "부채비율을 올 연말 150% 밑으로 낮추고 신용등급 하락을 막겠다"고 했다. 주주환원책도 포함됐다. "올해부터 5년간 당기순익 10%를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에 활용하고, 최소 주당 300원의 배당금도 보장하겠다"
그럼에도 증자 발표 직후 분위기는 냉랭했다.
"주주들이 봉이냐"는 소외감ㆍ박탈감이 원인
한화솔루션은 2021년에도 태양광과 그린수소 등에 투자하겠다고 1조3500억원 증자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분이 확실했다. 물량희석 우려에도 불구, 증자에 우호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빚 갚겠으니 돈을 달라"라고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증자다.
그럼 회사가 빚더미에 쌓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한화솔루션은 김동관 부회장 주도의 솔라허브 프로젝트 등으로 미국 태양광 생산기지 구축에 외부차입으로 수조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중국 태양광업체들의 공세로 수천억원의 영업손실이 남았다. 빚이 쌓인 판국에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니 이자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신용등급이 조금만 떨어져도 조달금리 급등으로 연간 이자비용이 수천억원 늘어날 기세다. 경영진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고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경영실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라도 내비치는 게 한국적 정서(?) 아닌가. "잘못했음". 딱 네 마디. IR을 통해서든, 커뮤니케이션 위원회를 통해서든 혹은 주주간담회나 여러 Q&A 세션을 통해서라도 그간의 경영부진에 대해 '사과'하고 '이해'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업환경 변화로 인한 자금조달의 불가피성을 양해해 달라" 정도의 논조만 보였다.
한화는 지난 17일 보도자료 등으로 "솔루션 남정운 케미칼 부문 대표, 박승덕 큐셀 부문 대표가 '유상증자 추진 초기에 충분히 소통하지 못해 반성하고 사과 드린다'라고 했다"라는 입장이다. 동문서답이다. 원천 배경이 되는 경영실패 자체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그저 유증 발표 과정에서 소통부재만 언급했다.
늘 이런 식이다. "우리 사과했는데 뭘?" , "적법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증자 당시에도 비슷한 태도들이 드러났고 빈축을 샀다. 매번 '방어논리'만 앞세우는 회사를 반길 주주들은 없다.
그렇게 사과보다는 방어에 급급하다보니 주주간담회에서 "증권신고서 내기 전에 금감원과 소통했다"라고 발언까지 나온다. 애꿎은 금융감독당국도 적으로 만들고서는, 해당 임원만 보직해임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단이 발생한다.
발표 방식만 봐도 그렇다. 주총에서 실컷 장밋빛 미래를 논하다가 이틀 뒤 불쑥 '청구서'를 들이밀면 누가 좋아라 할까. 유증 정보를 미리 유출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닥쳐서 챙기는 소통이 아니라 주주와의 꾸준한 소통, 그리고 주주를 주주로서 대접해 주는 태도를 말하는 거다. 그러니 "돈 달라고 할 때만 주주들을 찾는데 우리가 호구냐"라는 반응이 나온다.
사실 시가총액 3분의 1에 달하는 증자를 하면 물량희석으로 피해보는 건 주주들이다. 이게 확대되면 "오너 일가를 위해서 주주들을 희생시킨다"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한화 계열사도 증자에 참여한다고 해서 주주들 모두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 따지면 솔루션 경영부진 때문에 증자에 동원될 한화 계열사의 다른 주주들은 또 무슨 죄인가.
왜 유독 한화만? 기업문화 탓도 거론
사실 한화만 이런 상황에 처하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어느 오너 그룹이든, 경영진들이 주주보다는 총수 일가의 눈치를 먼저 보고, 그들의 지배력 확장과 이익보장을 먼저 신경 써왔다는 논란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 유독 한화는 다른 그룹보다 소통과 공감 부족 이슈를 자주 겪는다. 그럴 사안이 많아서 일수도 있지만, 한화가 가진 기업문화라는 배경도 거론된다.
한화그룹의 공식 사가(社歌)는 1980년 '한국화약그룹의 노래'로 제작돼 불려졌다가, 2002년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맞아 새롭게 발표됐다. 신 버전의 사가에 한화 기업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신용과 의리'도 등장한다.
신용과 의리로 가꾸어 온 우리 한화
한데 뭉쳐 나아간다 정상의 신화로
겨레와 인류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꿈의 불꽃 쏘아 올리며 세계로 나가자
한화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어
환한 세상 밝혀주는 큰 빛 되리라
사실 한화가 지금 위치까지 오르는 데는 김승연 회장 특유의 카리스마, 그리고 불도저식 리더십이 큰 동력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신용과 의리'라는 가치관은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정서로 이어졌다. 아직도 재계 곳곳에는 한화 임원들의 퇴임 이후에도 김승연 회장이 직접 이들을 챙기고 마음을 써줬다는 전설 같은 미담들이 남아 있다.
이런 문화는 그룹 특유의 가족주의로 이어지고, 탄탄한 내부 결속력과 구성원들의 높은 충성도를 창출해낸다. 이로써 덩치가 큰 대기업임에도 불구, 총수 일가의 지도 아래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엄청난 추진력이 발생한다. 그런 문화가 빛을 발해서 모두가 반대했지만 대한생명(한화생명) 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삼성그룹과 빅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을 주요 계열사로 끌어올렸다. 대우조선해양도 좋은 조건에 인수하고 이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새 주인으로도 거론된다.
하지만 헌신과 의리, 신용은 어디까지나 내부 구성원에 해당되는 얘기다. 결국 대상자는 '총수 일가와 임직원'들로 제한된다. 재무적 투자자들이나 은행이나 자본시장에서 함께 활동하는 금융회사들은 외부인의 영역에 해당되기 마련이다. 즉 '우리'와 '그들'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당연히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차이가 커진다.
그렇다면 일반주주 혹은 소액주주들은 신용과 의리를 강조해온 한화그룹에게 있어 '우리'에 해당될까. '그들'에 해당될까.
이런 문화라면 자본시장과 접점을 찾을 때 우선순위 설정 그리고 주주들을 대하는 문법에 아무래도 '빈틈'이 생긴다. 안으로 똘똘 뭉치다보면 밖으로 소홀히 할 여지가 생긴다는 건 그리 무리한 해석이 아닐터다.
21세기 주주 자본주의와 충돌 가능성 높아져
문제는 '신용과 의리'로 대변되는 응집력 있는 기업문화가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주주 자본주의'와는 거의 정반대 지점에 있다는 점이다. 탄탄한 내부결속력과 빠른 의사결정은 고도성장기에는 강력한 추진력의 원천이었을지는 몰라도, 주주 각각의 권리 보호를 강요하는 시대흐름과 배치되기 쉽다.
그러니 당장 정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안(제382조의3)부터 충돌이 빚어진다. 예전에는 이사회가 유상증자나 합병을 결정할 때 과거에는 "회사에 이익이 된다"라고 설득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소액주주의 가치 훼손이 확인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주 충실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까지 검토해야 한다. 이미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ACT)가 주주충실의무 위반 등으로 한화솔루션 유증에 소송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집단소송의 범위와 피해보상 대상도 넓어지는 중이다. 이제까진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으로 주가조작, 허위 공시에 등의 피해에만 집단소송이 이뤄졌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집단소송법'이 제정되면 대상은 전 분야로 확대된다. 아울러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판결의 혜택을 본다 (옵트아웃 Opt-out 방식). 여기에 올해 중순 시행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또 하반기 시행될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은 주주들의 개입과 간섭을 더욱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무기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도 여전히 내부 결속력 중심의 문법과 대응으로는 또 다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혹은 한화솔루션 유증사태가 불거지지 말란 법이 없다.
정부와 '공생관계' 모양새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현재 한화와 정부의 관계는 '서로가 원하는 패를 가진' 공생관계로 평가된다. 정부가 주도하는 재생에너지 드라이브는 한화의 태양광 사업에 큰 힘을 실어준다. 국정 핵심과제로 꼽히는 'K-방산 수출'의 가장 큰 주역 또한 한화그룹이다. 정권 입장에서보면 '정책적 유용성'이 큰 기업집단에 해당된다. 이른바 정부가 원하는 '태양광ㆍ방산ㆍ우주사업'의 핵심파트너로서 지위가 확고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강력하게 주장해 도입했다. '편법승계'를 가장 경계하고 비판해 왔음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작년 3월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조단위 유상증자 때,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기업들이 자본시장을 현금인출기(ATM)으로 여긴다"는 비판을 페이스북에 직접 코멘트한 이력도 있다. '한국의 록히드 마틴'으로 거듭나가는 한화에 대한 시기(?)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간과하기 힘들다.
결국 관건은 향후다. 앞으로 있을 한화에너지 지분처리 문제, 김동관 부회장 등의 완전한 지분승계, 그리고 한국항공우주산업 관련 여러 움직임이 남아있을 터다. 이때마다 "주주를 무시한다"라는 공감대가 또 형성된다면? 지금 한화그룹의 엄청난 성장기세를 갉아먹고 있는 건 본인들 스스로라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입력 2026.04.23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4월 21일 07:00 게재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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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과 아직은 공생관계 …향후 태도 개선이 관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