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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은 어느 날 갑자기 터진 문제가 아니다. 지금 노사 대립을 임금 갈등으로 치부하는 시선이 적지 않은데 그렇게 단순화하기 어려운 문제다. 삼성 내부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보상 체계에 대한 불신이 누적돼 왔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파격적인 보상 기준을 제시하며 불쏘시개를 던졌는데, 마침 메모리 산업의 초과이익이 폭증하면서 기름을 들이부은 꼴이 됐다. 겨우 경쟁력을 복원하는 듯했던 삼성전자는 내부에서 다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SK그룹 역시 보상 확대가 불러올 파장을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마땅한 합의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한계 봉착한 삼성式 인재관리·보상 시스템
삼성그룹은 고도의 중앙 집중적 질서를 갖춘 국내 최대 대기업 집단이다. 과거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계열사별 독립성을 강화하는 추세이나, 여전히 인재관리나 보상 철학은 그룹 차원의 강력한 조율 아래 통합된 내부 노동시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계열 간 인사 이동도 가능하고 직급 체계나 평가 기준도 일정한 틀 안에서 공유하면서 그룹 전체 재무구조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반영해 보상 체계를 꾸려온 것으로 유명하다. 정점에 있는 삼성전자에는 최상위 인재가 집중됐고, 이에 걸맞은 국내 최고 수준의 보상이 뒤따랐다. 소위 삼성'전(前)자'냐 '후(後)자'냐 우스개도 여기서 출발했다.
이런 회사에서 성과급 문제로 불과 반년 만에 과반노조가 결집해 내달 초유의 총파업을 앞두고 있다. 작년 9월 수천명 수준이던 초기업노조 가입자는 어느덧 8만명을 향해간다. 그간 누적된 보상 체계에 대한 불신과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특정 시점을 계기로 한꺼번에 조직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27일에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삼성전자가 우리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믿기에,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성숙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해주기를 촉구한다"라고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그러나 회사 수용 능력은 물론 협상력에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다. 요구를 따랐다간 사업부 간 보상 불균형을 넘어 그간 그룹 차원에서 유지해온 보상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해야 하는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특유의 중앙집중형 관리 방식이 근본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장기 투자와 리스크 관리에서 압도적 효율을 자랑해온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처럼 산업 질서가 급격하게 뒤바뀌고 메모리 초과이익이 폭증하는 국면에선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 오히려 안팎 불균형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게 됐다는 평이다.
삼성전자 출신 한 관계자는 "그룹 컨트롤타워가 구축한 체계가 중심이라서 메모리 사업부 요구를 들어주자면 DS부문, DX부문을 넘어서 그룹 재무, 투자 계획까지 줄줄이 딸려오는 구조"라며 "메모리 사이클의 급격한 전환을 예상하지 못해서 준비가 안 된 것도 있을 것. 근데 보상 요구만 급격히 커지니 제대로 된 대응이 안 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불 붙이고 슈퍼사이클이 기름 붓고
현재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산정 기준을 영업이익 15~20% 수준으로 명문화하고 ▲현재 상한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회사가 장기 투자와 그룹 경영을 이유로 정당한 보상을 미뤄왔으니, 이제라도 개별 성과에 따른 실질적 보상 체계로 넘어가자는 게 주요 골자다. 다분히 SK하이닉스를 의식한 요구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 수뇌부 안에서도 보상을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없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SK하이닉스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동일 산업 내에서 서로 다른 보상 철학이 충돌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그간 성과급 산정 기준으로 영업이익 대신 경제적부가가치(EVA) 기반의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활용해왔다. 한해 50조~60조원 수준 설비투자(CAPEX)가 필요한 산업 특성상 성과가 드러나기까지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투입한 자본 비용이나 장기 수익성, 투자효율까지 따져 초과이익을 측정하자면 영업익보다 EVA가 적합한 기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기존 방식이 재무적으로 합리적일뿐 앞으로 인력 유출을 방지하고 노조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최근 회사가 EVA 20%와 영업익 10% 중 하나를 택일하는 방안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급 방식이나 명문화 등 다른 첨예한 변수들이 산적해 있어 최종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박사급 인력이 SK하이닉스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로 이직했는데, 기존 회사 생산직과 연봉 격차가 2배, 3배로 벌어진다고 하면 그걸 누가 받아들일 수 있나"라며 "업계 원로들을 대동해서 여론전을 펼쳐봤자 지금 노조 투쟁심에 부채질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군다나 현재 삼성전자 노조는 물론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도 향후 수년간 회사의 이익 규모 확대를 공통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메모리가 인공지능(AI) 인프라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사이클 성격은 물론 회사 수익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히 사이클 초입에 있는 지금 새로운 보상 기준을 확정하려는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작년 영업익 10% 기준을 명문화했을 당시 1억~2억원 정도 연봉 격차가 예상됐다면 사이클이 본격화하면서 이게 5억원, 6억원 단위로 커진 셈"이라며 "노조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번에 못을 단단히 박아두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문제化"…SK그룹서도 서서히 새나오는 불안감
이번 사안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SK하이닉스 입장도 이 상황이 달갑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물론 다른 대기업 그룹사에서도 SK하이닉스의 파격적인 보상 체계가 국내 노동시장에 영구적인 변화를 초래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올해 200조원 이상 영업익을 기반으로 내년부터 10억원을 넘어가는 성과급 문제가 현실화할 경우 사회적 파장은 갈수록 커질 수 있다.
SK그룹 내부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여론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연초만 해도 부러움 섞인 반응이 대다수였으나, 이제는 공정성이나 정당성 시비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비교적 고소득층이 많은 금융권 내에서도 SK하이닉스 성과급을 두고 "인생은 타이밍"이나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식 하소연이 부쩍 늘었다.
SK하이닉스가 내세운 성과주의 자체는 옳은 구호이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면 정책적 개입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의 성과급이 정당한 소득 수준을 까마득히 벗어날 것으로 전망되다 보니 노력에 따른 보상보다는 지대(rent)에 가까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구성원들이 열심히 일한 덕도 있겠지만 메모리 반도체가 글로벌 AI 산업 지형에서 점하게 된 구조적 이점 덕분에 누리게 된 초과이익인 것도 사실"이라며 "출발선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SK하이닉스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생애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 여러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정책 문제로 불거질까 조마조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 2026.05.04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4월 29일 07:00 게재
취재노트
누적된 불신 터진 삼성전자 노조…균열 가속
보상 늘리자니 시스템 붕괴…구조적 딜레마
모두가 다 아는 "이번 사이클 다르다" 부담도
SK하이닉스도 과도한 보상 사회적 파장 걱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