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만에 뒤집힌 삼성물산·제일모직 기업가치…불편한 합병비율
입력 2015.06.09 08:53|수정 2015.06.09 08:53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논란]②
    2014년말 주당 가치로는 삼성물산 지분 1주당 제일모직 지분 1.3주 줘야
    최치훈 대표 취임 후 수주·실적 부진…1분기 실적악화로 주가 급락
    결과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에 유리한 구도…"불공정하다" 반기
    • [06월05일 18:19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건 합병발표 직전 수개월동안 이어진 삼성물산 주가 하락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물산은 2013년 12월 새 사령탑 취임 이후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실적이 침체하며 주가도 하락 곡선을 그렸다. 시가총액이 역사적인 저점에 가까운 시기에 주가 고평가 논란이 제기되는 제일모직과 합병을 발표하니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며 반기를 든 것이다.

    •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삼성물산이 더 높았다.

      2014년 하반기 삼성물산의 평균 주가는 7만1800원선에서 형성됐다. 반면 작년 12월 상당한 제일모직의 주당 평가액은 5만4300원이었다. 제일모직 상장 주관사들이 핵심적인 4개 부문의 가치를 개별적으로 계산하고, 보유 계열사 지분 가치를 고려해 합친 공정가액이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 그래프는 엇갈렸다. 삼성물산 주가는 수주 부진과 실적 부진에 안전사고가 겹치며 하락했다. 합병 발표 전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 2013년 6월 이후 최저점에 가까웠다. 반면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최상위 회사로서의 프리미엄이 부각되며 공정가액의 3배가 넘는 가격으로 시장에서 거래됐다.

      지난해 말 삼성물산 평균 주가와 제일모직 공정가액으로 두 회사의 가치를 따지면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1.3주를 줘야 한다. 삼성물산 3주당 제일모직 1주를 주는 현재의 합병가액과는 간극이 넓다.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는 가장 좋지 않은 시기에 합병이 결정된 셈이다.

      엘리엇의 반대는 이런 인식에 기반한다는 분석이다. 제일모직 주가는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졌고, 삼성물산 주가는 그 반대이므로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이번 합병의 최대 수혜자는 명확하다. 본인 지분 희석을 최소화하며 연결고리가 약했던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엘리엇은 합병 발표 전 삼성물산 지분 4.8%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엘리엇 보유 지분의 가치에 '피해'를 끼친다고 느끼자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제일모직 고평가-삼성물산 저평가라는 지금의 합병 구도가 만들어지기까지 부자연스러운 모습도 눈에 띈다. 지난 2013년 12월 삼성물산 사장으로 취임한 최치훈 대표는 삼성그룹의 핵심 전문경영인이다. 삼성전자 프린팅사업부·삼성SDI·삼성카드 대표를 지내며 탁월한 경영수완을 보여줬다.삼성물산 대표 취임 이후 기대가 컸지만 이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축소 지향적인 경영에 중점을 뒀다.

      매출의 절반, 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 부문은 수주가 줄었다. 삼성물산의 지난해 수주실적은 13조800억원으로 2013년 대비 32% 줄었다. 목표 대비 60%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올해 1분기 수주 규모는 1조4000억원으로 올해 연간 목표액의 8.9%를 달성하는 데 그쳤다. 수주 부진에 주가는 더 하락했다.

      실적도 곤두박칠쳤다. 삼성물산은 올해 1분기 매출액 6조1076억원, 영업이익 48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 대비 각각 5.6%, 57.7% 줄어든 수치다. '안정적 물량 소화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최근 온기가 감돌고 있는 주택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1분기 주택사업 매출은 전년대비 35% 줄었다. 삼성물산이 래미안(來美安) 브랜드를 포기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지만 회사측은 방어하지 않았다.

      실적이 부진할 때 아래를 받쳐줘야 할 그룹 내부 일감 규모도 감소했다. 올해 1분기 5735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7345억원 대비 22% 줄었다. 줄어든 그룹 일감은 대부분 삼성엔지니어링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담합, 베트남 항만부두 현장 사고, 민간인 사찰, 지하철 9호선 씽크홀 논란 등에 휘말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주당 순자산이 8만3600원인데 주식매수청구가가 5만7200원으로 차이가 큰건 1분기 실적 부진이 시장 가격에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4.06%)의 시장 가치만 8조원으로 주식매수청구가 기준 삼성물산 기업가치(9조원)에 맞먹는다"고 말했다. 엘리엇의 합병 반기에 국내 투자시장에서도 드러내진 않지만 합리적인 지적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