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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 있는 금융회사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견제'와 '합리적인 판단'이 금융회사의 미덕으로 통하는 시대인 까닭이다.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이사회에 외부인(사외이사)를 절반 이상 두도록 강제한 제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맥락에서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체제의 이단아같은 존재로 꼽힌다.
그는 금융시장의 모두가, 심지어는 그가 키운 내부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던 투자도 강행했다. 어느 땐 옳고 어느 땐 틀렸다. 인사이트펀드는 틀렸지만, 상하이 오피스빌딩은 옳았다. 그래도 옳았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업적을 쌓고 자산을 늘리며 국내 1위 비은행계열 금융그룹이 됐다.
그런 그가 투자할 물건을 찾아 떠나는 비행기에서 서신을 띄웠다. 박 회장은 2500자 분량의 서신에서 단 한 차례도 '국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1위', '최고' 라는 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그는 글로벌 투자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무엇에 투자할 지,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 박 회장의 머릿 속에선 이미 국내 경쟁사와의 경쟁따윈 사라진 것처럼 읽힌다. 우월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경쟁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는 미래에셋을 국내 1위 금융투자회사 브랜드로 키워냈지만,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최현만 수석부회장에게 뒷일을 맡기고 자신은 미국으로 떠났다. 출장기간은 6개월이라고 전해진다. 국내의 은행계열 대형 금융그룹이나 다른 증권사에서는 따라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행보다.
미래에셋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금융시장 관계자들도 '올해는 미래에셋의 해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다른 경쟁자들은 내우(內憂)가 해소되지 않았다. 삼성증권과 운용은 그룹 이슈에 몸을 한껏 낮췄다. 한국투자증권과 운용은 자본력에 한계가 있다. NH투자증권은 '농협' 브랜드가 득보다는 짐이 되는 분위기다. KB증권은 쪼개진 리더십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박 회장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커지며 그의 말대로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는 호기도 찾아왔다. 그도 여러차례 '글로벌 오피스'와 '해외 인수합병(M&A)'을 언급했다.
남은 건 어떤 결과물을 보여주느냐다. 미래에셋이 선도한 글로벌 오피스 빌딩 투자는 이젠 레드오션이 됐다. '선진국 주요 지역 오피스 빌딩 매각엔 한국인만 득실댄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펀드 투자의 물길도 바뀌었다. 워렌 버핏은 지난달 주주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9년 전 헤지펀드 운용사 프로테지 파트너스와의 내기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의 압승이었다. 액티브펀드 붐을 이끌었던 '박현주 펀드'의 영광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결국은 숫자로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 회장의 서신을 본 한 금융업계 관계자의 촌평이다.
여담이지만, 박 회장의 편지를 공개한 주체가 미래에셋자산운용인 점도 호사가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미래에셋이 '투자회사'라는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운용을 내세웠다는 평가도 있고, 자본 규모에 비해 미래에셋대우의 그룹 내 입지가 아직 크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래에셋 내부에서는 운용을 거쳐야 별(임원)을 달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미래에셋 직원은 운용으로 발령나면 기뻐서 을지로 센터원빌딩을 두 바퀴 뛰어 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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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3월 02일 16:51 게재]
입력 2017.03.03 07:00|수정 2017.03.06 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