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 출고가 인하로 1위 수성 의지
"모기업 AB인베브의 한국시장 관심 물음표"
내년 두 회사간 점유율 격차 더 좁혀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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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올라온 하이트, 변화 없는 오비, 존재감 없는 롯데, 주춤한 수입맥주’
올 한 해 맥주시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비맥주의 독주였던 지난 몇 년간의 맥주 시장에서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테라의 선전으로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롯데는 야심차게 맥주 시장에 진출했지만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내년엔 점유율을 두고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 맥주시장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 뒤치락 해왔다. 2011년부터는 ‘카스’를 앞세운 오비맥주가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해왔는데 지난해부터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맥주 시장 점유율을 공식집계하는 기관이 없어 업계 추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까진 오비맥주 약 60%, 하이트진로 약 30%, 롯데칠성 약 10%로 파악되는데 현 시점에선 오비맥주 50~55%, 하이트진로 35~40%, 롯데칠성 5~10% 수준으로, 하이트진로가 5~10%에 달하는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그만큼 오비맥주와 롯데칠성의 점유율이 빠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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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업계에선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격차는 더 좁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오비맥주 여건상 하이트진로의 가세에 마땅한 대응을 내놓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비맥주가 점유율을 뺏긴 이유로는 두 가지가 거론된다. ▲하이트진로 신제품 ‘테라’의 인기에 대응할 제품 및 전략 부재 ▲모회사 AB인베브의 한국시장 대응 의지 부족 가능성이다.
맥주 사업은 점유율에 따른 실적 변화가 극명해 점유율 확대가 성장의 핵심 요인이 된다. 실제로 점유율 지표를 통해 이들 기업의 실적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이트진로의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173.7% 오른 258억원을 기록했다. 맥주 신제품 테라의 인기로 여름 판매량이 늘었기 때문인데 테라의 월 판매량은 3월 40만상자, 5월 95만상자에서 7월 140만상자, 9월 225만상자로 빠르게 늘고 있다.
세계 최대 맥주 제조업체 AB인베브가 모기업인 오비맥주는 지난 9월 홍콩 증시에 상장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체인 버드와이저브루잉(Budweiser Brewing Co. APAC)을 통해 실적을 추산해야 한다. 오비맥주의 국내 매출액은 버드와이저APAC에서 일본과 뉴질랜드 매출과 함께 APAC East에 포함된다. APAC East의 3분기 판매량은 17% 감소했는데 대부분 오비맥주 국내 판매량 부진에 기인하고 국내 판매량은 15% 이상 감소했을 것이라는 게 키움증권의 분석이다.
오비맥주가 실적 악화에 대응할 전략이 부재하다는 평가와 함께 모회사 AB인베브의 한국 시장 대응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기업인 AB인베브가 보기엔 오비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하이트진로나 롯데칠성처럼 한국 시장을 대하는 의지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성장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사업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고 이를 성장성 있는 곳에 투자하는 전략을 써온 AB인베브에 한국은 전자에 가까운 시장”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AB인베브는 오비맥주를 6조8000억원, EBITDA멀티플 13배 수준의 높은 가격으로 인수했다. 투자는 지지부진하고 원금 회수에 집중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AB인베브는 지금까지 오비맥주로부터 배당과 유상감자 등을 통해 총 1조650억원(배당수익 총 7150억원, 유상감자 3500억원)을 회수해 인수 금액의 16%를 이미 회수했다. 오비맥주는 과거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시절부터 시설투자에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모펀드(PEF) 특성상 단기간에 CAPEX(자본적지출)를 늘리는 데 부담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략적투자자(SI)인 AB인베브에 더욱 모진 평가가 돌아가는 이유다.
오비맥주가 내놓은 카드는 지난 4월 4.7% 인상했던 카스 출고가를 원상복귀하는 정도다. 가격을 올릴 때는 원가 압박 때문이라고 했지만 6개월간 출고가를 4번이나 바꿨다. 이례적인 가격 변동 반복은 하이트진로의 신제품 '테라'를 의식한 탓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인데 도매상들로부터 시장 혼란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재고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도매상 입장에선 마진 불확실성이 떨어지는 경쟁사 제품 위주로 유통을 늘리고 이는 곧 카스가 점유율 경쟁에서 더욱 뒤쳐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른 증권사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오비맥주가 꺼낸 카스 출고가 인하 카드는 단기간 매출 향상엔 도움이 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유율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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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는 테라 등 신제품 효과 덕을 톡톡히 봤지만 이제 이를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3분기 누적기준으로는 영업이익이 떨어진 데다가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다. 차입금은 오히려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신규 사업자인 롯데칠성은 대규모 공장을 증설했지만 클라우드, 피츠의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고민이다. 여기에 일본 불매운동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다.
주요 변수였던 수입맥주는 성장 정체 상태다. 수입맥주 성장률은 지난 2분기 -2.9%로 10년 만에 최초로 역성장했다. 주류업계는 수입맥주가 성장세를 회복해도 아직까지는 카스와 테라가 주도하는 스탠다드 라거가 주요 시장이라며 내년 특히 이들 브랜드 간의 점유율 경쟁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내년엔 하이트진로가 1위 재탈환까지 어려워도 점유율 격차는 더욱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류업계는 하이트진로의 점유율이 최대 45%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CEO와 CFO가 기업설명회(NDR)에 힘쓰는 등 투자자들과의 접점도 늘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AB인베브는 최근 오비맥주 수장을 교체했다. 브루노 코센티노 전 사장은 AB인베브 아프리카 지역 담당 마케팅 총괄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벤 베르하르트 신임 사장은 20년 동안 AB인베브의 영업과 물류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영업에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알려졌다. 영업전문가가 온 만큼 결국 음식점과 주점 등 영업용시장에서 점유율 사수에 역량을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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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2월 0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