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2차전지 구조조정, 사전작업에만 1년 걸리나
입력 2024.05.23 07:00
    6월이 분수령…시나리오 많은데 뚜렷한 카드 애매
    산업 불확실성에 내부 사정 복잡…아직은 파악 단계
    축소 기조 돌아선지 반년 남짓…물리적 한계도 큰데
    경영진 책임 자처할까 의문…연말까지 길어질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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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 2차전지 사업 구조조정을 두고 설익은 시나리오가 연일 새나온다. 6월 그룹 확대경영회의가 분수령으로 지목되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뇌부가 칼자루를 세게 휘두르기도, 경영진이 책임을 온전히 감수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전해진다. 사전 작업에만 올 한 해를 쏟아부어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달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각 계열사에 사업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룹 내 각종 태스크포스(TF)나 소위원회 차원에서도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있지만 각사 경영진에도 직접 현황과 대책을 따져보라 요구한 것이다. 확장 전략에서 돌아선지 불과 반년 남짓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 여전히 실행 계획을 따져보는 단계로 풀이된다. 

      시선은 자연히 2차전지 사업장으로 쏠린다. 배터리 셀·분리막·동박 등 주력 사업 외에도 계열마다 중복 투자가 전방위로 이뤄졌다. 현재 시장에선 통매각, 파트너사 유치, 이종 사업장과 합병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오르내린다. 그룹 내 여러 부서에서 검토는 됐지만 대부분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통한다. 가장 유력했던 SK온 외 소재사 매각 방안도 최 의장 요청으로 보류된 상태다. 

      오는 6월 그룹 확대경영회의까지 그룹 차원의 종합 검토 결과가 보고될 예정이다. 어느 정도 방향성은 잡히겠으나 구체적인 실행에 나서기까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일단 2차전지 산업 전망 자체가 불확실하다. 성장성을 뒷받침하던 많은 가정들이 깨졌고, 예상 못 한 변수들이 계속 수면 위로 드러나는 중이다. 시장에선 상반기까지 부진이 불가피하다 분석하고 있지만 미국 대선 등 대형 이벤트가 있는 하반기 전망도 좋지 않다. 고객사 변심·보조금 정책 변수·불안정한 메탈가·안전 규제 등 변수를 나열해 보면 최소한의 재무적 가정도 세우기 어렵다는 우려가 전해진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사 신차 출시 일정이나 기존 전기차 모델의 판매 성적에 따라 실적을 가늠해 왔는데, 기존 가정이 계속 틀어진다"라며 "최근만 해도 중국 업체가 반고체·전고체 전지 양산 시점을 앞당기면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중장기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SK그룹 입장에서 보면 살려야 하는 사업의 조달 전략부터 정리가 필요한 사업장 가치 평가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실제로 SK온은 지난 3년간 상반기마다 현금이 부족해 투자 유치·모회사 수혈·대출을 일으켜 왔다. 지금은 SK넥실리스나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본 궤도에 올린 사업도 적자를 내고 있다. 수주 잔고를 자의적으로 집계해 온 관례에 대해서도 시장 반감이 적지 않다. 구조조정 이전에 각사 재무적 가정에 대한 시장 신뢰가 형성되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룹 2차전지 사업이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핵심 성과인 것도 고민을 키우는 지점이다. 최 수석부회장이 직접 키워 온 사업이다 보니 여전히 의지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정리 작업이 한창인 SK스퀘어처럼 속도전을 요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리적 한계도 만만치 않다. 최창원 의장 체제 들어 수펙스가 사업 축소를 위한 컨트롤타워로 기능한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수십조원을 들여 미국·중국·유럽·동남아에 구축한 생산기지의 사정을 일일이 파악하고 조정 작업을 지휘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 

      수펙스가 지배구조상 각 계열 이사회 판단을 뛰어넘은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경영진 입장에선 본인이 책임져야 할 사업을 그대로 보고하고 실행에 나서는 것도 부담이다. 

      결국 2차전지 사업 구조조정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만 올해 연말까지 시일이 필요할 거란 가능성도 제기된다. 6월을 전후해 외부 컨설팅 결과를 포함해 각사 보고가 상층부에 집결되겠지만 이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시간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6월 이후 경영진 책임에 대한 그룹 차원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전해진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그룹에서 특정 사업을 매각하려 해도 진행이 안 되는데, 계열 경영진이 직접 책임지고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과감하게 보고를 하기도 어렵다"라며 "새 체제에 힘이 실린 것은 맞지만 아직 교통정리가 완벽하게 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하반기 이후를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