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만 바꿔 넣은 꼴…결국 효성 품에 남게 된 특수가스
입력 2024.12.17 07:00
    Invest Column
    효성화학 특수가스, 결국 효성티앤씨가 인수
    소수지분? 경영권?…애초부터 불투명한 거래
    한숨 돌린 효성화학, 효성티앤씨 재무부담 이제부터
    채권단에 자구안 노력 보인 조현준 회장
    알짜 사업부 잔존시킨 소기의 성과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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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효성그룹의 뜨거운 감자였던 효성화학의 특수가스 사업 부문은 결국 그룹 품에 남게 됐다. 계열사로의 매각에 성공한 효성화학은 당장의 부담을 다소 덜어낼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그룹 차원으로 확장한다면 조(兆) 단위 이상을 기대하던 유의미한 현금 유입 및 재무개선의 효과는 보기 어렵게 됐다.

      효성티앤씨 이사회는 12일 효성화학의 특수가스 부문을 총 9200억원으로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내달 23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통과하면, 1월 말까지 최종 인수를 완료하겠단 계획이다. 외부 매각을 철회하고 그룹에서 소화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거래에 속도가 붙었다.

      이번 거래는 2년 연속 순손실에, 부채비율이 약 5000%까지 치솟은 효성화학이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사업부를 팔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비교적 알짜 사업부로 꼽히는 특수가스 사업을 외부에 매각함으로써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겠단 계획이었다. 

      물론 효성그룹의 자발적인 계획이라기 보단 주채권은행(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강력한 재무개선 대책을 요구한 게 배경이 됐다. 채권단은 대대적인 자구안이 나오지 않으면 워크아웃(채권단공동관리절차)까지 불사하겠단 입장을 전달하면서 효성 특수가스 매각이 수면 위로 등장했다.

      그룹 입장에서도 몇 안되는 알짜 사업부를 외부에 매각하는 부담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금 수혈이 절실한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수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모습은 아니었다.

      최초 투자자를 모집할 당시, 회사는 투자제안 요청서에 소수지분(49%)의 매각으로 단정지었고 매각 이후에도 회사가 이사회의 과반 이상을 구성하도록 명시했다. 투자자들에겐 최대 49%의 지분율 내에서 원하는 지분율과 배당 희망 금액 정도만을 제시하도록 했다. 회사의 동의 없이는 IPO 전까지 주식을 처분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도 달았다.

      보장수익률과 동반매도청구권(Drag-along) 등도 보장하지 않았는데, 원매자들 사이에선 "진짜 급한 회사가 맞느냐"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번 거래를 계기로 2020년 효성그룹이 효성캐피탈을 매각하던 당시 주관사를 수차례 교체하며 투자자를 저울질하던 사례가 회자되기도 했다.

      원매자들과의 줄다리기 끝에 효성화학은 IMM프라이빗에쿼티와 스틱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지분 100%를 총 1조3000억원 규모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협상 과정에서 거래 가격이 8000억원대까지 낮아지자, 회사는 우협 선정을 철회하고 계열사 매각으로 선회했다. IMM과 스틱이란 국내 최대 PEF 운용사가 손잡고 공동으로 M&A를 성사한 첫 사례로 기록될 뻔 했다.

      효성화학 입장에선 일단 급한불은 껐다. 1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부에서 평가한 금액 이상의 현금 유입효과를 보면서 차입금 부담을 덜어냈단 평가다.

      그렇다고 효성그룹 자체의 재무부담이 줄어들었다고 보긴 어렵다. 효성화학과 효성티앤씨는 ㈜효성이 각각 지분 32.8%, 20.3%를 보유한 자회사들이다. 효성그룹의 오너인 조현준 회장은 효성화학 지분 12%, 효성티앤씨 지분 20%를 보유한 대주주이다. ㈜효성과 조현준 회장의 지배력에는 변함이 없고, 효성화학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계열사가 동원된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효성티앤씨는 "미래 성장 동력이 필요하단 판단 하에 이뤄진 거래"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판덱스 부문은 업황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시점이었단 설명이다. 반도체 시장이 업사이클로 전환하면 특수가스 사업의 수익성 역시 개선할 것으로 봤고, 효성티앤씨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단 계획이다.

      이번 거래가 효성화학 및 효성티앤씨에 중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효성티앤씨의 특수가스 사업 인수 가능성이 제기된 지난달, 효성티앤씨의 주가는 급락세를 나타냈다. 사업적 시너지 보다 재무부담에 초점을 맞춘 투자자들이 대거 투매에 나선 탓이다. 효성티앤씨의 인수가 확정된 이튿날인 이달 13일, 주가가 다소 반등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추세 상승인지,'불확실성 제거'란 단기 이벤트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반도체 업황에 기댄 특수가스 사업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9000억원이 넘는 자금소요에 효성티앤씨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지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효성티앤씨는 보유하고 있는 매출채권 및 유동자산을 활용해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추후 인수금융 등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과정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될지 역시 미지수다. 이번 거래가 효성화학에 비교적 유리한 거래란 평가가 탓에 효성티앤씨 경영진의 배임, 부당지원 의혹 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효성캐피탈 매각에 이어 오랜만에 M&A 시장에 매물을 들고 나타난 효성그룹은 이번에도 매끄럽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조현준 회장 입장에선 채권단을 향해 자구안 이행 노력을 보였고, 동시에 결과적으론 알짜 사업을 지키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으나 ㈜효성, 효성화학, 효성티앤씨의 투자자들의 직접적인 실익과는 연결되지 못했다.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 최대 규모의 PEF 운용사 등은 M&A 매물을 쏟아내는 형국이다. 이들이 진정성을 갖고 매각 작업에 착수한건지, 아니면 투자자들에게 '우리가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주기 위한 것인지 모호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효성화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데, 특수가스 사업부문 매각 역시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지만 결론적으론 손에 쥔 결과물이 미미한 거래로 끝이 났다.

      그룹 차원의 손익계산은 추후에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외부 투자자들과 오랜 기간 줄다리기를 통해 '상대하기 어려운' 그룹의 이미지만을 부각했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재무부담을 털어낸 ▲효성화학의 실적개선 ▲효성티앤씨의 특수가스 사업부문과 시너지 극대화 ▲반도체와 화학 업종 턴어라운드에 따른 성장세가 모두 뒷받침한다면 이번 거래에 대한 평가도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