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통합시킨 산업은행, 이젠 구조조정 성적표 받을 시간
입력 2024.12.30 07:00
    아시아나, 산은에 차입금 1.1兆 조기상환
    산은, 한진칼 10%·3000억 EB 등 익스포저 여전
    HMM, KDB생명 매각 무산에, 산은 재무건전성 '노란불'
    그나마 성과있는 한진칼 통해 자금 회수 가능성
    산은 지분 출회시 조 회장 지배력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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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성사하면서, KDB산업은행이 주도한 항공산업 재편의 첫 단추가 꿰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으로부터 받은 대금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일으킨 차입금의 상당 부분 갚았지만, 산업은행이 투입한 공적 자금의 완벽한 회수까진 아직 갈길이 멀다. 

      HMM, KDB생명 등 산업은행이 중심이 돼 진행했던 산업 구조조정이 요원한 상태에서, 일정부분 성과를 낸 한진그룹의 투입금 회수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빌린 차입금 1조400억원(영구전환사채 6800억원, 운영자금대출 4200억원) 등을 조기상환했다. 회사는 이달 내로 기간산업안정기금 600억원을 변제할 계획으로, 대한항공으로 인수가 확정된 이후 총 1조1000억원의 정책자금을 상환하게 된다. 산업은행(약 1조2900억원)과 수출입은행(약 51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에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제공했는데, 이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통해 상당 부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론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에 제공한 대출 외에 한진칼에 직접 투입한 자금을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지난 2020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면서 한진칼 보통주 약 5000억원 규모를 인수하고 대한항공 주식이 담보인 교환사채(EB) 3000억원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산업은행은 현재 한진칼의 지분 10.6%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3000억원 규모 EB의 만기는 내년 12월이다. 대한항공 주식의 교환가액은 2만4317원으로 현재 대한항공의 주가와 거의 유사하다. 현재는 표면이자율 2.5%에 해당하는 이자를 매 3개월마다 수취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대한항공 주식으로 교환할지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나 대한항공 주식으로 교환한다면 3% 내외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보유한 EB를 대한항공 주식으로 교환할 유인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주가흐름에 따라 판단을 하겠지만, 대한항공의 주식을 대량 보유하게 될 경우 추후 회수에 대한 고민을 재차 해야하기 때문에 상환으로 가닥을 잡을 개연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한때 재계의 가장 큰 화두였던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산업은행의 등판으로 잠잠해졌다. 산업은행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지분을 대거 보유하면서 조원태 회장 측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산업은행 없이 조 회장이 완벽하게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조원태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8%, 호반건설이 약 17%를 보유한 대주주로 자리잡고 있다. 조 회장 측의 확실한 우군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Delta Air lines, Inc.)이 약 14.9%를 보유하고 있지만 산업은행 지분 10.6%의 향방에 따라 경영권을 위협받을 여지는 언제든 남아있단 평가다. 

      산업은행은 지난 2020년 조원태 회장과 투자협의서를 체결하면서 3인의 이사 지명권을 확보했다. 올해 초 실제로 신규 3인의 이사(배성례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 홍동표 법무법인 광장 고문, 송백훈 동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를 추천, 해당 인사들이 이사진에 합류하며 활동하고 있다.

      조 회장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산업은행이 앞으로도 한진그룹에 잔류하게 될 지는 미지수이다. 구조조정의 성과를 일정 부분 도출했고, 한진그룹의 안정화에도 이미 기여한만큼 한진칼의 주식을 대거 보유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초대형항공사(FSC)의 유의미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단 상징성도 무시할 순 없기 때문에 손익계산을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HMM 매각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산은이 보유하고 있는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7200억원 규모의 CB를 HMM 주식으로 전환하게 되면 산은의 자본건전성 지표가 하락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산업은행의 주요 산업군에 대한 지원 여력 감소와 이어진다. 산업은행이 공적자금 회수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통령의 탄핵 정국 속 산업은행의 기조 역시 확실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현 정부 내에서 편법승계 혐의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부터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거친 호반건설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