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對美 불확실성 증폭
'위기' 또 '위기' 강조한 정의선 회장
글로벌 판매전략 새판짜기에 중국도 포함
年 2조씩 벌던 중국…정치적 리스크는 상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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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다시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판매 차종을 줄이고 공장을 매각하며 중국시장 철수설이 돌았지만 최근 현대차그룹은 베이징현대에 대규모 증자를 결정하며 다시금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는 평가다.
명실상부한 현대차의 제 1시장인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여느때보다 커졌다. 글로벌 판매전략 새판짜기에 나선 현대차그룹의 중국몽(中國夢)이 이번엔 성공적인 결말을 맺을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역대 글로벌 판매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현대차그룹에는 '낙관론'보단 '위기감'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6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위기'를 수차례 강조하며 "작년에 잘 됐으니 올해도 잘 되리라는 낙관적 기대를 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며 "잘 버티자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빠르게 질주할 수 있었던 배경인 코로나 종식 이후 찾아온 글로벌 차량 교체 수요, 우호적인 환율 등 외부 요인이 올해에도 지속할 것으로 예단하긴 어렵다. 피크아웃(Peak out), 즉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 여파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단 불안감이 엄습한 상황에서 정 회장 역시 위기를 강조하며 대응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시장에 재도전하겠단 의지 역시 유사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는 BAIC와 함께 양사의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BHMC; 北京现代汽车)에 총 10억9547만달러(약 1조6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이 가운데 절반을 출자한다. 베이징현대는 지난해 9940억원, 올해 3분기 478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법인으로 현대차의 해외 법인 가운데 가장 큰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중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북미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온 현대차그룹에 위협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미국 대관 라인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내고 있지만, 막강한 대관 네트워크만으로 풀기 힘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게 현실이다.
이미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된 미국 시장은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중국 시장에서 다시 판로를 모색하겠단 의지를 나타내고 있단 평가다. 물론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도 유효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전기차 보급이 이뤄진 중국 시장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에 계륵(鷄肋)같은 존재로 여겨져 왔다. 전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 시장이자, 자리를 잡는다면 꾸준한 수익이 담보된 시장이긴 하지만 언제든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정치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단 점은 글로벌 메이커들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
현대차그룹에도 중국은 조(兆) 단위 수익을 안겨주던 시장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갈등을 빚을 당시, 일본 완성차 업체의 중국 점유율이 급락하자 그 빈자리를 현대차가 꿰차며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점유율이 9%까지 육박하던 2013~2014년엔 연간 2조원의 수익을 거뒀다.
일본 기업들의 저력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토요타(TOYOTA)는 중국 현지기업에 기술 이전을 약속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섰고, 혼다(HONADA) 역시 SUV 차량을 대거 투입하며 중국 시장의 점유율을 점진적으로 회복해나갔다.
현대차의 중국몽이 사라지기 시작한건 2017년부터다. 중국과 한국의 고고도미사일(THADD)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판매량이 급감하며 아직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현대차는 물론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며 "당장 수익이 날 것으로 보긴 어렵지만, 현대차그룹 차원에선 손실을 최소화하고 소폭이나마 점진적으로 점유율을 늘려가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장이다"고 말했다.
한동안 현대차의 투자자 설명회에선 '오성홍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의 빈자리는 인도와 브라질이 채우는 듯 보였으나, 신흥국 시장은 아직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캐시카우로 자리잡기까진 보다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으로 향하는 완성차 메이커는 비단 현대차뿐만은 아니다. 토요타는 중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고, 닛산(NISSAN)과 합병한 혼다 역시 중국시장 전용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며 적극적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중국 내 자국브랜드의 위상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독일 및 일본 브랜드의 점유율이 하락하는 것과 반대로 로컬브랜드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중국 승용차 시장의 로컬 브랜드 점유율은 약 65%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23년 말과 비교해 10%가량 늘어난 수치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자국 브랜드들은 이젠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과의 기술 경쟁에서 더 이상 뒤쳐지지 않는다. 전기차와 맞물린 자율주행 시대에선 오히려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기업들도 상당히 많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시장이자 외제차의 무덤으로 불리는 중국으로의 진출은 현대차에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과거의 선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선 보다 세밀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