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지배구조 해법은 건설?…삼성물산, 공격적 수주전으로 덩치 키우기
입력 2025.01.09 07:00
    도시 재정비 수주 급증
    확장 가능성 큰 건설에 집중…低밸류 탈피 전략
    올해 이재용 회장 부당 합병 의혹 항소심 선고
    합병 정당성 확보 위해선 삼성물산 가치 증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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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물산이 도시 재정비 사업에서 상당히 공격적인 행보를 나타내고 있다. 과거엔 수익성 중심의 수주를 강조하며 선별적인 수주에만 집중했다면, 최근엔 대규모 사업장 경쟁입찰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10년쨰 제자리 걸음중이다. 제일모직과의 합병 당시 발표한 매출 목표(2020년 60조원)는 이미 지키기 못했다(2024년 말 기준 42조원).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 가치에도 못미치는 시가총액으로 인해 만년 저평가란 꼬리표가 붙어있는 상태다. 국내 시공능력평가 1위, '래미안'이란 브랜드 가치를 앞세워 앞으로 진행될 도 정비사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동시에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단 복안으로 해석된다.

      그룹 차원의 이슈에서도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올해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항소심 결과가 나온다. 이 회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의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양측이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다면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시 삼성물산의 주주들 상당수는 합병에 반대했고 실제로 ISS·글라스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삼성물산 주주들은 합병에 반대하라”고 권고했다.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소송까지 불사하며 합병에 반대했다.

      국정농단 사태와도 떼어내서 판단하기 어려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은 결국 이재용 회장과 경영진, 주요 관료들과 정치권 인사들이 구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내홍을 겪고도 합병 ‘삼성물산’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삼성물산에서 건설 부문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상사(31%), 패션(5%), 리조트(2%), 바이오(9%) 등은 건설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작고 또 확장성이 크지 않다. 결국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증대는 건설무문의 성장과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회사들의 내부 공사를 통해 안정적인 수주 실적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상황이고 내부 공사의 수익률 역시 그리 높지 않기 아니기 때문에 내부 거래 물량에 마냥 의존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삼성물산이 건설 부문의 확장을 위해 꺼낸 카드는 다시 '도시 재정비' 사업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도시정비사업에서 목표액(3조4000억원)을 초과한 3조6398억원의 수주를 기록했다. 전년도 수주액(2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아진 수치다. 현재는 강북권 최대 재정비 사업장으로 꼽히는 한남4구역의 시공사 선정에 도전하고 있다. 연초 마수걸이 수주에 성공하면 1조5000억원 이상의 잔고를 쌓고 한 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제까지 삼성물산은 경쟁입찰을 지양해 왔다. 표면적으로 수익성 위주의 전략을 내세우다보니 다른 건설사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전략이 내실있는 수익 확보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확장성 측면에선 다소 한계로 꼽혀왔던 게 사실이다. 

      삼성물산의 달라진 행보는 한남4구역 수주전에 나타난다. 금융지원, 특화설계 등 조합원 이익 극대화를 앞세워 경쟁사인 현대건설을 압도하기 위해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해당 수주에 성공하면 또 하나의 초대형 사업장으로 꼽히는 압구정 등 강남권 재건축 사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단 판단도 깔려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과거 시공권 확보를 목표로 수주전에 참여한 것과는 달리, 최근엔 부동산 개발 인력들을 대거 채용하며 직접 시행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당분간 도시 재정비 사업에서 상당히 활발한 수주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물론 건설 부문 확장 전략이 꾸준히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건설 사업은 그 특성상 크고 작은 잡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특히 재건축·재개발은 철거부터 입주까지 민원이 끊이질 않는 사업으로 꼽힌다. 자칫 혼탁한 수주전에 발을 들여 구설에 오른다면 삼성그룹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은 국정농단 사태로 이재용 회장이 재판을 받을 당시 굉장히 보수적인 수주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건설 부문이 재정비 사업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더라도, 주가 상승과 기업가치 증대로 있을진 미지수이다. 이미 자체 사업보다는 삼성전자의 대주주로서 더 주목 받는 상황이고, 삼성전자 자체가 사업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부문의 성장이 얼마나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진 미지수란 지적도 있다. 바이오 사업 등 우호적인 전망이 주를 이루는 계열회사의 후광 효과는 기대해볼만하단 평가도 나온다.

      국내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자체 사업에 집중해 가치를 평가하는 투자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오랜 기간 낮은 밸류에이션 상황이 지속했고, 이미 현재의 기업가치가 고착화했다"며 "그룹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삼성물산이 자체 사업만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물산 측은 "반도체 산업 등 전방 산업의 불확실성이 크고 건설 경기의 하강 국면이 예상됨에 따라 삼성물산 본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건설 부문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