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자'…BIS비율ㆍ주주환원 부담에 계열사 지원 망설이는 금융지주들
입력 2025.01.10 07:00
    신평사, 금융지주 계열사 모니터링 강화
    환율상승·RWA 관리에 지주사 '발등의 불'
    증자 등 보통주 지원보다 신종자본 인수
    기업은행 '후순위예금' 지원 방식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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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주의 지원에 기대왔단 주요 은행금융지주 계열사들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홀로서기'에 돌입해야 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지주의 지원 여력이 줄어들며, '보통주 증자'로 대표되는 직접적 지원이 어려워지고 있는 까닭이다. 

      자본건전성과 주주환율 재원 확보를 위해 향후 지주들은 신종자본증권 인수, 후순위 예금 예치 등 간접적인 방향으로, 꼭 필요한 계열사에만 선별 지원에 나설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가 수 년 간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비수익 계열사에 대한 정리도 이뤄질 수 있을 거란 관측이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계열사인 IBK저축은행에 대해 1000억원 가량의 5년 만기 '후순위예금'을 지원했다. 후순위예금은 중도 상환이 불가능한 예금으로, 저축은행이 파산할 경우 다른 모든 예금이 전액 변제된 경우에만 변제받을 수 있다.

      기업은행이 증자 대신 후순위예금 방식으로 계열 저축은행을 지원한 것은 현재의 어려움이 5년 이상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면도 있지만, 그만큼 모회사의 지원 여력이 녹록치 않은 측면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전례를 찾기 힘든 '후순위예금' 지원 방식을 두고, 업계에서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다.

      KB금융은 지난 2022년부터 KB증권 등 계열사들을 지원할 때, 증자 참여가 아닌 신종자본증권 인수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지주의 자본은 투입했지만, 보통주 출자가 아니기에 이중레버리지비율이 올라가지 않는 효과가 있다. KB금융이 해당 방식을 활용한 이후, 하나금융 역시 하나증권에 대한 지원에 나설 때 보통주 출자가 아닌 신종자본증권 인수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지주사들의 계열사 지원 여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최근 신용평가기관들은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과 부동산 신탁사 등 계열사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이는 한동안 금융지주 계열사들에 대해서 만큼은, 지주사의 지원 여력을 고려해 신용등급을 1~2노치(단계) 상향 평가한 것과 대조되는 행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연말 정기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금융지주 계열사들에 대한 등급 조정은 크게 없었다"라며 "다만 과거 지주 계열사들에 대해서는 지원 여력을 고려해 등급 조정이 잘 없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 보니 저축은행과 신탁사 등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지주사들의 올해 계열사 지원 여력은 예년 대비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해 지주 회장들의 신년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올해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신년사들 통해 그동안 단골로 등장했던 '1등', '해외진출', '신사업 확장'이 아닌, '내부통제'와 '주주환원'을 강조한 바 있다.

      4대 금융지주들의 올 한해 영업 방점이 '내실 강화'에 찍힌 상황에서, 계열사들 역시 지주사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평가다. 금융지주 역시 BIS 비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위험가중자산(RWA)과 주가 관리를 등한시할 수 없는 탓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고, 탄핵 정국 속에서 국내 정세가 혼란을 거듭하면서 환율이 고공행진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3일 15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68원에 거래되고 있는데, 일각에선 연초 1500원을 돌파할 거란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화값이 10원 하락할 때 5대 금융지주의 RWA는 약 1조98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RWA는 은행의 자산을 대출이나 미수, 해외투자 등 유형별로 위험정도를 감안해 재평가한 값이다. 환율이 급상승하면 외화 RWA의 원화환산액이 늘어 총자본비율이나 보통주자본(CET1) 비율 등 원화RWA를 바탕으로 계산되는 은행 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킨다. CET1 비율은 지주와 은행의 주주환원 여력과 직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의 저축은행에 대한 '후순위예금' 지원은 업계에서도 사례를 잘 찾아볼 수 없었던 만큼 모회사의 지원 여력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라며 "다만 올해는 '후순위예금' 정도라도 지원해줄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지주사들의 자회사 지원 여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계열사 지원 기조 변화가 '확장 일변도'였던 국내 은행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야 은행금융지주를 중심으로 한 금융사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지주사 체제로 개편한 금융사들은 BIS비율 여력을 바탕으로 비은행 확장에 잇따라 나섰다.

      이제는 BIS비율 확보를 위해 계열사 추가 출자 등에 발목이 잡힌만큼, 이전같은 확장은 불가능할 거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이 수 년 간 지속된다면, 수익성이 나지 않는 비은행 포트폴리오에 대한 매각, 흡수통합 등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거란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주주환원이 국내 금융사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며, 중장기적으로 주주들 역시 배당여력에 영향을 주는 저수익 계열사 매각ㆍ청산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확장 일변도였던 주요 금융지주의 비은행 정책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보수적으로 돌아선 게 일종의 신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