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은 공매도와 10년 째 전쟁중
4월 공매도 재개 한 달, 또 셀트리온 공매도 잔고 1위
파격적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도 주가는 지지부진
공매도 금지 기간에도 눈에 띄는 주가 상승은 없어
셀트리온 공매도는 결국 신뢰도 문제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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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가 전면 재개된지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증시에선 하루 평균 6800억원에 달하는 공매도 거래가 발생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한 때 우리나라 증시를 주도했던 대표 기업들, 특히 2차 전지와 반도체 기업들에 공매도 비중이 높았지만 금액 측면에선 우리나라 대표 바이오기업 셀트리온이 단연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셀트리온의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약 3988억원 수준으로 코스피 상장기업중 가장 큰 규모 기록 중이다. 2차전지 기업 SK이노베이션(약 1850억원), 포스코퓨처엠(2960억원)과 비교해도 1000~2000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물론 시가총액 규모면에서 셀트리온과 큰 격차가 있단 점은 고려해야 한다.
셀트리온과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 회사 차원에선 공매도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최근 주주들에게 대차해지 당부 안내문을 발송하며 "대차거래는 주주의 권리이지만, 공매도와 연계돼 주가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이를 줄이는 것이 주가 안정과 기업가치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지난 2013년 서정진 회장 역시 공매도 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공매도에 질렸다. 주식 다 팔겠다. 절대 번복하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넘은 현재. 여전히 공매도 세력의 제1순위 타깃은 셀트리온이다. 공매도가 전면 금지됐던 시점,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며 지배구조개편을 통해 통합 법인을 출범했고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주가는 최근 신저가를 경신했다.
이는 지지부진한 주가에 대한 배경을 더 이상 공매도에서 찾기 어렵단 의미이기도 하다. 또 셀트리온이 공매도 세력의 먹잇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더 이상 외부에서 찾긴 어려워 보인다.
"사업성보단 성장성에 기댄 바이오 기업의 특성 때문"이란 일각의 해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매 분기 시장의 기대치에 부합한 실적을 증명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미 황제주에 등극한 것을 보면, 바이오 기업이 단순히 주가수익배율(PER)이 타 업종보다 높기 때문이란 설명이 불가능하다.
셀트리온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 짐펜트라(램시마SC)의 매출 신장이다. 지난해 4월 짐펜트라를 미국 시장에 내놓으면서 잡은 매출 목표치는 5000억원이었는데, 막상 실적을 열어보니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360억원에 불과했다 서 회장이 직접 현지 영업을 뛸 것을 시사하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결과물은 너무도 초라했다..
올해 주총장엔 서 회장 대신 서진석 이사회 의장이 나서 "올해 7000억의 짐펜트라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증권가에선 이미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20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란 투자자들의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블록버스터 제품의 마케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자자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고 이를 투자 유치까지 이어지게 하는건 오너 경영인의 역할이 맞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오너 경영인의 '선언'들이 구체화하지 못하고 또 실현되지 못하는 모습들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셀트리온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갉아먹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짐펜트라의 맥없는 매출로 인해, 셀트리온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성과는 묻혀버렸다.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오히려 실망 매물을 쏟아내는 모습이 연출됐는데, "차라리 사업 목표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발표했더라면 오히려 주가에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서 회장의 공격적인 발언들로 인해 셀트리온 내부 직원들도 역시 상당히 곤혹스러운 분위기로 전해진다. 매출 목표와 실적과의 괴리감, 향후 전망에 대한 투자자들의 문의에 대응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과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멸된다던 치료제 ▲100조원 헬스케어 펀드 조성 ▲대규모 M&A ▲셀트리온홀딩스 기업공개(IPO) ▲CDMO 사업 본격 추진 ▲인삼·홍삼 등 건강기능식품 사업 투자 등 서 회장이 공언할 때마다 주가는 요동쳤지만, 실제로 구현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2023년 '소방수'를 자처하며 한시적 복귀를 선언했던 서 회장은 올해 주총서 연임에 성공(?)했다.
이쯤 되니 투자자들이 '알아서 걸러 듣는' 수준에 이르렀다. 서 회장 발언도 주식시장과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년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오너의 '이상'과 '목표'를 현실과 구분하는 똑똑한 투자자들이 늘었단 평가다.
회사는 주주환원에 진심이다. 주식과 현금 배당을 실시하고, 매년 수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다. 최근엔 서 회장이 직접 사재를 출연해 자사주를 샀다. 계열사 매입 주식을 통틀어 올해만 약 8000억원의 자사주가 소각될 전망이다. 셀트리온은 우리나라 그룹사 어느 곳과 비교해도 파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실시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셀트리온의 주가는 52주 신저가. 엔비디아, 넷플릭스, 아마존 등 자사주 소각 한번 없이도 주가가 고공행진하는 글로벌 기업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주식에 투자하는 운용역들은 주식 매매로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공매도로 돈을 벌기가 훨씬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남의 주식을 빌려 주가 하락에 베팅하고 반드시 갚아야 하는 공매도의 특성상 언제든 마진콜(margin call)의 위기에 노출돼 있고 이런 위험을 무릅쓴 수익률이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단 판단이 깔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매도 전략을 세우는 투자자들은 확실한 '주가 하락'에 기대를 건다. 기업의 사업 성과와 재무 상태에 비해 주식시장에서 지나치게 고평가 돼 있고, 언제든 그 버블이 꺼질 수 있단 판단이 서는 종목을 대상으로 한다.
지금의 기업가치보다 더 떨어질 것에 베팅한 4000억원의 셀트리온 공매도 잔고는, 현재 셀트리온과 오너 경영인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나타내는 척도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