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비판 받은 그룹으로 꼽혀
방산사업 힘 받으며 윤 정부 수혜자로 낙인 찍히기도
오너일가 지분매입 시기마저 겹치며 논란 증폭
한화에너지 IPO때도 우려, 자초한 상황이란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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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둔 정치 격변기엔 "어느 기업이, 주요 후보와 친한가"는 어쩔 수 없는 관심사가 된다. 작년 미 대선에선 일론 머스크가 일찌감치 트럼프를 지지, 온갖 수혜를 누리는 그림이 나왔다. 국내 증시에서는 연일 이재명 테마주가 기승을 부린다.
반대로... 지난 정부에 혜택을 받았다고 평가 받는 기업들은 조심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정권 변화로 정책들이 뒤집히고, 정치 보복의 영역이 민간으로 이어지는 일도 생겨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러시아 내통 의혹 제기에 역할을 한 친(親)민주당 성향의 로펌(퍼킨스 코이)를 겨낭해 행정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국내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는 롯데가, 문재인 정부 때는 카카오가 정권의 '총아'라고 인식된 바 있다.
당연히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이다.
지금 정치권의 비판을 가장 많이 그룹은 한화다. 작년 국감 때 다른 대기업을 다 놔두고 그룹 후계자가 국감 증인에 채택됐다. 차기 대통령 1순위 후보가 "자본시장을 현금인출기로 여긴다는 비판에도 할말이 없다"라고 논평 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오너 3세 승계를 비판하고자 좌담회를 열고, 상임위원회를 가리지 않고 21명의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이에 동참한다.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로 한화 케이스가 거론된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부터 김대기ㆍ명태균까지...
윤석열 정부의 혜택을 받은 그룹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뚜렷한 기준은 없다. 다만 한화의 경우 여러 정황을 놓고 설왕설래가 자주 오갔던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21년 간 새 주인을 못 찾은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이 윤석열 정부 출범 4개월 만에 한화 품으로 안겼다. 전투기 엔진ㆍ자주포ㆍ장갑차 등 지상무기 사업을 하던 한화에 잠수함ㆍ군함이 추가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후 육해공 종합 방산기업이 됐다. (관련기사 : 대우조선으로 한화-尹정부 밀월관계 기대?…후계 '당위성' 입증카드 쓰일듯) 인수과정도 구주매출이 아닌 증자 2조원, 그리고 무려 5년 간 국책은행의 대출과 크레딧라인 유지조건으로 실행됐다.특혜 논란이 자연 생겨났다. (관련기사 : 21년 허송세월이 결국 대우조선을 김동관 부회장에게 헌납했다?)
최근 논란이 된 유상증자는 이로써 탄생한 한화에어로에 김동관 3형제 회사가 주주로 참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몇년 뒤엔 한화가 윤석열 정부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김대기 전 실장을 방산 관련 대관 역량을 강화하고자 영입하려 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한화는 이를 부인했고, 실제 실행되지는 못했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공직에서 물러난 후, 무려 10년 간 한화생명의 고문(부회장급)으로 재직한 이력이 있다.
최근 한화 방산사업은 명태균 씨와 연결고리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일부 언론(뉴스타파)은 검찰이 명태균 씨 PC를 압수 조사하는 과정에서 명 씨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특혜를 준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명 씨의 통화내역과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명씨가 한화의 주력 상품인 K-9자주포, K21 보병전투차량 등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도록 돕는 듯한 장면이 여럿 나왔다는 내용이다. 명 씨가 "한화가 요청한 사업들이 국회 예결위에서 모두 다 반영됐다"고 카톡 메시지로 보고 받는 장면도 나온다.
"윤 정부 수혜기업 맞아요"라는 야당, "보수정권과 같이한 기업 아니다"는 여당
한화는 이런 해석들을 모두 부인한다. "한화 소속 계열사의 (방산 관련) 수출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라는 것. 대우조선해양 인수도 순수하게 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국책은행이 감내하지 못하는 기업을 인수하는 부담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방산 산업이 주목 받는 것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더 크다고 봐야 한다는 것. "특정 정파나 정당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 적이 없으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게 한화의 입장이다.
한화의 주장처럼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수준의 시기적인 겹침도 분명 있어 보인다. 마침 전쟁이 터졌고, 마침 트럼프 당선 이후 조선업이 뜨기 시작했다. 한화에 대한 의혹들이 법원 판단을 받으며 모두 사실로 드러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정치권의 시각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매우 삐딱하다.
"이미 윤석열 정부 수혜를 입은 기업으로 본다. 윤 정부가 방산 수출 강조하면서 도와주지 않았나. 폴란드개발은행을 통한 무기 수출도 결국은 한화 지원이라는 게 저희 주장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해가는데 그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는 물음표다. 인수 과정에서 가격이 적절했는지, 매각 과정에서 다른 의도는 없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윤 정부 혜택이라는 시각도 있겠지만 윤 정부가 곧 여당은 아니지 않나. 또 한화가 보수정권과 운명을 같이한 기업이었던 것도 아니지 않나"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
한화는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더 키우는 모습을 취했다. 일례로 작년말 김동관 부회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될 당시. 한화그룹이 기사에 게재되기를 희망하며 내놓은 공식 입장이 다음과 같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바도 없고 오히려 재계에서 경영능력과 평판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김동관 부회장을 증인으로 선정했다. 과거 부정적이고 정경유착의 소지가 있었던 대관조직을 축소한 것이 이유가 아니다. 증인 채택을 밀어부친 쪽에서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김동관 부회장의 도덕성을 강조하느라 국정감사 자체를 싸그리 비난하는 어투로 읽힌다.
하필 이 시기에…오너일가 회사 보유지분 매입?
게다가 이 민감한 시기에 한화오션 잔여지분 매입과 한화에어로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탄핵 정국의 여파가 정국이 몹시 불안하던 때다. 또 몇몇 그룹의 중복상장 논란으로 소액주주들의 권익보호가 강력하게 요구되던 시기다.
성난 주주들이 눈에 불을 켠 상황에서 저런 거래가 나왔으니...한화가 아무리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고 주장해도 한화에어로 3.6조원의 자금 모집 필요성은 물론, 꼭 증자여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김동관 3형제가 보유한 회사에 현금 1조3000억원이 들어간다고 하니 반발이 더 심해졌다.
논란을 해소하고자 취한 과정도 정교하지 못했다.
"3.6조 현금을 모으면서 왜 미리 회삿돈 1.3조원을 김동관 3형제에게 배분했느냐"는 비판에 "그럼 그 1.3조원을 도로 회사로 가져오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러면서 "사회적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김동관 3형제는 시세로 한화에어로 주식을 받으니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논리를 내밀었다.
이럴거면 1.3조의 원상복귀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논란이 없도록 증자규모를 발표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김동관 3형제에게 한화에어로 지분을 쥐어주고자 처음부터 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
한화는 절대 의도성이 없었음을 강조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김동관 3형제 회사는 한화오션 잔여지분을 팔고 그 돈으로 한화에어로 지분을 받게 됐다. 트럼프 취임 전 39만원대 였던 한화에어로 주가는 최근 목표주가가 130만원으로 제시됐다. (관련기사 : 결국 김동관 대관식을 위한 밑그림?…돌고돌아 알짜 '한화에어로' 주주로 올라선 오너家)
한화에너지 IPO때는 또 어떻게...
감독당국이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를 승인하면 사태가 마무리될까. 논란 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은 모든 시선은 한화에너지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김동관 3형제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너지의 모체는 그룹 시스템통합(SI) 회사 한화S&C였다. 그룹 내부의 SI 일감을 받아가면서 커 온 회사가 여러 과정을 거쳐 3형제 소유의 회사가 됐다. 여기에 에너지 사업 등이 붙으면서 규모가 커졌다. 이에 시장은 한화에너지와 (주)한화의 합병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보는 시각으로 우려를 표명했고 이에 그룹은 양사간 합병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하지만 한화에너지의 기업공개(IPO)과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화에너지는 IPO 주관사 3곳(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대신증권)을 선정해 놨다.
회사 태생 자체가 이미 '일감 몰아주기' 우려가 제기된 곳이었다. 그리고 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지배하는 상태인데 이 상태로 주식시장에 상장 시킨다? 시장가격 형성 과정에서의 논란부터 예상된다. 또 어떤 식으로 구주매출을 진행하더라도 "개인 주주 돈으로 승계 작업의 기초를 쌓았다"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주주 여러분의 돈은 모두 김동관 3형제에게 갑니다"라는 지적이다. 다른 어느 대기업서도 한화에너지처럼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를 곧바로 상장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잖아도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한화를 손 봐야한다"하는 인식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이때 또다시 한화에너지 IPO라는 불쏘시개가 주어진다면? 논란은 재점화되고, 정치권이 '자본시장'과 '소액주주 보호'라는 테마를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 보기 어렵다.
이미 여의도는 '소액주주 환심=표'라는 공식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선거철은 계속 도래한다.
상황이 이쯤 되면, 그리고 한화그룹이 그간 보여준 대응양상을 보면.... 한화가 문재인 정부에서 성장했는가, 아니면 윤석열 정부에서 혜택을 받았는가 하는 궁금증은 오히려 사소한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