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밸류에이션에 기관들 "밴드 하단도 부담"
운용업계 "무리한 상장보다 철회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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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상반기 대어로 주목받았던 DN솔루션즈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을 철회했다. 대내외적 불확실성도 영향을 줬지만, 근본적 원인은 '높은 밸류에이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DN솔루션즈는 지난달 30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이달 2일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두 회사 모두 "금융시장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기업가치를 적정하게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을 이유로 들었다. 업계에선 수요예측 성적이 부진해 희망 공모가 밴드 하단에서도 공모가를 확정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 '대어'들이 잇따라 철회한 것과 달리, 최근 100억 원대 소규모 공모주들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수요예측을 진행한 6개 기업(쎄크·로킷헬스케어·나우로보틱스·오가노이드사이언스·원일티엔아이·이뮨온시아) 중 로킷헬스케어를 제외한 5곳이 공모가를 희망 밴드 상단에서 확정했다. 이 중 로킷헬스케어와 이뮨온시아를 제외한 4곳은 네 자릿수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나우로보틱스는 1394.96대 1로, 올해 진행된 수요예측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들 기업은 공모 규모가 작은 것뿐 아니라 공모가를 비교적 낮게 책정한 점이 흥행의 요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9일 상장을 앞둔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한국투자증권이 프리IPO 당시 1주당 3만1988원에 투자했지만, 공모가는 2만1000원으로 책정됐다. 투자 당시 인정받은 금액보다 약 절반 가격에 상장하는 셈이다.
한 공모주 운용역은 "코스피냐 코스닥이냐, 공모 규모가 크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밸류에이션의 문제"라며 "최근 코스닥 상장사들은 프리IPO 때보다 낮은 밸류로 공모가를 확정한다. 오히려 대형 딜의 경우 패시브 자금도 붙기 때문에, 공모 흥행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DN솔루션즈는 운용업계에서 '공모가가 예상보다 높다'는 평이 많았다. 산업은행과 스틱인베스트먼트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던 작년 4월보다 약 두 배 높은 기업가치로 공모가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연초 수요예측에 성공했던 LG CNS의 주가가 이후 급락하며, 기관투자자들이 보수적으로 대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롯데글로벌로지스에 대한 평가는 DN솔루션즈보다 더 부정적이었다. FI로부터 투자받았을 당시보다 절반 이하의 기업가치를 적용학니 했으나, 물류업 전반의 침체로 성장성에 의문이 제기된 까닭이다. 공모금액보다 더 많은 차액을 FI에 보전해줘야 하는 구조도 투심을 위축시켰다는 평가다.
다만 대형 공모 딜 특성상 대내외 변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단 평가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 선거,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이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DN솔루션즈와 롯데글로벌로지스 모두 대선과 관세 협상이 마무리된 이후 공모 재개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100억 원 규모 공모는 시장이 소화할 수 있지만, 1000억 원 이상 딜은 대내외 불확실성 때문에 기관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며 "대규모 딜은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 기대를 모았던 두 회사가 상장을 철회했지만, 운용업계에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무리하게 상장했다가 주가가 급락하는 것보다, 수요예측 단계에서 조정을 거쳐 시장 수용 가능성을 높인 구조로 재도전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또다른 공모주 운용역은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한 상태에서 공모가 하단 또는 하단 미만으로 상장했다가 주가가 떨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회가 낫다"며 "서울보증보험처럼 가격을 더 낮춰 재상장에 도전하면, 펀드 운용 입장에서도 더 나은 기회가 된다. SK엔무브, 한화에너지 등 준비 중인 대형 딜도 밸류를 더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