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불안 커지는 SK이노베이션…시급해진 자본확충 시나리오
입력 2025.05.09 07:00
    부채비율 200% 돌파…레버리지 감당 불가한 사업 환경
    연내 재무개선 필요…다수 금융기관과 조달 방안 논의中
    영구채 전액 자본 인정될지…IPO·자산 매각도 미지수 평
    6월 확대경영회의가 분수령…결국 그룹 차원 결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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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에 대한 불안감이 예사롭지 않다. 신용등급을 방어하자면 연말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개선이 필요한데 회사도 여러 방안을 두고 고심하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자본성 증권 발행이나 자산 매각, 증자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오르내리지만 이번만큼은 단기 처방에 머물러선 안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분기 말 순차입금이 32조8531억원까지 늘며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섰다. 이달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주력 사업장이 이제 막 적자에 들어선 것을 감안하면 2분기 이후 재무 불안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수익은 줄고 차입 부담은 불어나며 재무 레버리지를 감당할 수 있는 현금창출 기반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양상이다. 

      30일 진행된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도 투자가들이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집중 문의했으나 회사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부채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하고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사업 조정)을 병행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에는 복수의 금융기관과 다양한 조달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국내 대형증권사 한 관계자는 "3년 전부터 연결 자회사들이 상환전환우선주(RCPS), 유상증자, 외부 차입으로 매년 부족한 현금을 메워왔다 보니 최종적으로 SK이노베이션이 짊어지는 부담이 너무 커졌다"라며 "회사도 자체 사업으로 부채를 줄일 수 없다고 보고 여러 제안을 받아보고 있다. 그룹 일정이나 신용평가업계, 규제당국 분위기도 살펴야 해서 방식을 확정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당장 빠르고 확실한 선택지로는 영구채 발행이 꼽힌다. 고율의 이자가 부담이긴 해도 발행 주관 증권사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즉각적인 자본 확충에 나설 수 있는 방안이다. 작년부터 SK그룹을 포함한 다수 대기업 그룹사들이 재매각 없이 증권사가 발행 전량을 떠안게 하는 식으로 영구채를 찍어 일시 자본확충 효과를 누려왔다. 

      그러나 국내외 신평사들이 SK이노베이션이 발행하는 영구채 전량을 자본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느냐가 걸림돌로 예상된다. 현재 재무구조를 감안하면 자본성을 인정받기 쉬운 형태로 발행 구조를 설계하기도 어렵고, 신평사들이 자본성 인정 기준을 보수적으로 적용할 가능성도 크다는 이유에서다. 영구채 총액을 자본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면 부채비율 개선 없이 이자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 

      SK엔무브와 같은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통해 구주매출 공모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당분간 쉽지 않다.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거래소나 금융감독원 등 당국 실무진들이 모자회사 중복상장처럼 소액주주 보호에 반하는 조달 방식을 허용해 주지 않는 기류가 짙어졌다. 주관 업계에서도 선거 이후 각계 인선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중복상장을 추진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회사가 기조를 뒤집지 않으면 자산 매각 작업도 쉽지 않다는 평이다. 2차전지 분리막 자회사인 SK IET나 석유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의 납사분해설비(NCC) 등 시장에서 외면하는 저수익 자산 매각만으로는 적기에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무적 투자자(FI) 동의를 구해 수익성을 갖춘 매물을 내놓는 게 현실적 방안으로 꼽히지만, 이 역시 매각대금을 연내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SK온의 해외 공장을 매각하거나 합작법인(JV) 지분을 파트너십에 넘겨 유동화하는 방안도 꾸준히 대안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그룹사 내에서 이 같은 방안을 포함해 다른 대기업 그룹사와의 빅딜 가능성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배터리는 물론 전방 전기차 산업이 미국의 관세와 생산세액보조금(AMPC) 정책 변수에 직접 노출돼 있어 이 역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 3월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낮췄기 때문에 연말까지 부채를 줄이거나 자본을 채우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서 인수합병(M&A) 시장 전반이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데, 자산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자면 눈높이를 크게 낮추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보유 지분을 담보로 금융권과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고금리 대출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편이다. 5~6% 안팎의 수수료를 물면서 PRS 계약을 체결해 부채를 상환하면 현금 관리 측면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사면초가 분위기 속에 오는 6월 예정된 SK그룹의 확대경영회의가 결국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 자력으로 내놓을 수 있는 해법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 그룹 차원의 결단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금융권으로부터 다수 제안을 받아보는 상황 역시 6월 회의 준비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일찌감치 최대한 우호적인 텀(투자 조건)을 확보해둬야 모회사의 지원을 끌어내기 유리해질 거란 판단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해 다른 계열사에서도 유상증자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후로 대규모 유상증자가 정무적 리스크가 돼버린 게 문제"라며 "당장 땜질 처방만으로는 하반기 또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니, 이번에는 확실한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6월 회의 전까지 전사 차원에서 비상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