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롯데손보, 콜옵션 행사 놓고 '강대강' 대립 격화
"금융사 자본확충 vs 사모펀드 투자 구조" 근본적 충돌
금감원, "재무적 투자자는 단기 주주이익 극대화가 목표" 간접 비판
업계 "향후 사모펀드의 금융사 인수·경영 진입장벽 높아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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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과 롯데손해보험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 심상치 않다. 금감원은 전날 롯데손보의 콜옵션 행사 강행을 두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경고성 발언을 한 상태다. 금감원의 강경 발언에도 불구, 롯데손보가 후순위채를 상환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양측 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관련업계에선 금감원이 자본확충의 방편으로 사실상 증자를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JKL파트너스 측에선 이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PEF가 금융회사를 인수했을 때 직면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가 이번 갈등을 통해 표면화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PEF 관련 규제를 준비 중인 금융당국의 '심기' 역시 관심사안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금감원과 롯데손보 간 갈등의 시작점은 지난 2월 후순위채 발행 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감원이 롯데손보의 후순위채 발행을 보류시키면서 양측 간 불화가 드러났다.
금감원은 롯데손보가 후순위채 투자설명서에 무저해지보험 해지율과 관련해 회사에 유리한 '예외모형'만을 기재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측은 '원칙모형'을 적용할 경우 하락하게 되는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도 투자설명서에 함께 명시할 것을 요구했으나, 롯데손보는 투자심리 악화 등을 우려해 결국 후순위채 발행을 중도에 철회했다.
원칙모형 적용을 권고하는 금감원의 창구지도에도 불구하고 롯데손보가 예외모형을 선택하면서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보험사의 재무지표를 보수적으로 관리·감독하려는 의도였던 반면, 롯데손보는 원칙모형 선택이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자사의 결정을 고수한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손보가 예외모형을 통해 킥스비율 하락을 일정 부분 방지할 수 있었던 점이 이러한 결정의 배경으로 해석된다.
금감원은 롯데손보에 예외모형이 적용된 1분기 결산 승인 이후에 사채 발행을 진행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시적으로 갈등이 수그러드는 듯했으나, 이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롯데손보의 후순위채 콜옵션 만기 도래가 쟁점의 핵심이었다. 1분기 결산 이후 사채 발행은 5월 15일부터 가능했으나,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일은 그보다 앞선 7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차환이 어려워지자 롯데손보는 콜옵션을 먼저 행사한 후 추후에 후순위채를 발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콜옵션 행사 이후 지급여력비율(K-ICS)이 150% 미만으로 하락한다는 점을 들어 법령상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자본확충을 통해 법령 요건을 충족한다면 콜옵션 행사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채 발행이 어려웠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증자를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감원은 전일 개최된 브리핑에서도 "당국 입장으로서는 장기적인 지속성이 있는 기본자본 확충을 희망하긴 한다. 유상증자, 이익잉여금 확충 2가지가 대표적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번 갈등의 본질이 결국 유상증자 여부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금감원은 지속적으로 자본확충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롯데손보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양측은 콜옵션 행사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상황이다.
물론 롯데손보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없지는 않을거란 지적도 나온다. 보험사 관련 회계제도는 최근 1~2년간 급격하게 개편돼왔다. 롯데손보의 경우 제도 강화로 인한 킥스 하락분이 100%포인트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 제도 개편으로 인해 수치로 드러나는 재무건전성이 예상보다 빠르게 저하됐는데, 대응책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다만 본질적으로 이번 금감원-롯데손보 갈등은 PEF의 금융사 경영에 내재된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업은 본질적으로 충분한 자본 여력이 필수적이나, PEF의 운용 특성상 추가 증자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PE는 출자자(LP)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정해진 한도 내에서 운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증자를 진행하려면 다수의 출자자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를 넘어 투자자들이 이를 경영상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아 동의 확보가 쉽지 않다.
이미 JKL은 2019년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상당한 자본을 투입한 바 있다. 당시 롯데그룹으로부터 롯데손보 지분 53%를 3700억원에 인수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36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했다. 현재 매각 절차마저 지연되고 있어 투자금 회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추가 자본 투입에 대한 출자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일 가능성이 있다.
쟁점이 된 지급여력비율(K-ICS)도 향후 규제 기준이 130% 선으로 하향 조정될 예정이어서, JKL 측에서는 "이번 국면만 극복하면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다른 보험사와 달리 대주주가 재무적투자자이고 장기적 안정성보다 단기적 주주이익 극대화가 목표이기 때문에 다른 보험사의 결정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하는 배경이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라고 언급했다.
특히 '단기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발언을 여러번 반복했는데, 이는 사모펀드가 금융사를 경영하기에 구조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을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과거부터 PEF의 금융사 인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해왔다. 사모펀드는 본질적으로 투자금 회수를 위해 일정 시점에 경영권을 매각해야 하는 구조인 반면, 금융업은 경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핵심 가치로 작용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고객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자본적 여력이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점도 당국의 우려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사태는 금융당국이 평소 가지고 있던 사모펀드의 금융사 소유에 대한 문제의식이 현실화된 사례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JKL이 롯데손보를 인수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당시 제시했던 선제적 증자 계획을 꼽고 있다. 금감원은 재무여력이 미흡한 금융사의 경우 자본확충 계획을 면밀히 검토하는데, JKL이 롯데손보 인수 당시 수천억원 규모의 증자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크게 개선했기 때문에 사모펀드임에도 경영 역량을 인정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 갈등은 사모펀드의 금융사 인수 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를 추가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초기 인수 시점에는 출자자들의 동의를 얻어 증자를 시행했지만, 이후 기본자본 규제 강화 등 추가적인 규제 변화와 감독당국의 창구지도로 증자 필요성이 다시 대두됐을 때는 사모펀드가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명확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향후 M&A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JKL의 롯데손보 등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힌 대형 투자 건들에서 연이어 갈등이 표출되면서, 사모펀드의 투자 환경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금융사 인수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금융사 인수의 경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해 금융당국이 직접 거래 성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진화될 이슈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사모펀드들이 금융기관 M&A를 추진하는 데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