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한화, 미 전투함 MRO 수주전 첫 과제는 '시설인증보안(FCL)'
입력 2025.05.12 07:00
    미 해군 '전투함' MRO 참여엔 FCL 필수
    국내 조선업체, 아직 한 곳도 FCL 승인 못 받아
    한화 신청했지만 승인까지 수년 걸릴 수도
    펠런 미 해군성 장관 방한에 기대감 고조되지만
    실제 수주 규모·국내 업체 간 경쟁은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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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미국 해군의 군함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핵심 진입 요건인 '시설인증보안(FCL, Facility Clearance Level)' 확보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연간 11조원 규모의 미 해군 MRO 시장은 최근 국내 조선주의 '특수선 모멘텀'으로 작용해 왔지만, 제도적 기반 없이는 실제 파이를 가져가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 해군 MRO 사업은 규모 자체도 크지만, 미국 시장에서 레퍼런스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장기적으로는 미 해군 군함 건조 사업 진출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다. 특수선 도크가 비어있는 국내 조선업체들엔 기회로도 여겨진다. 

      미 해군 MRO 수주를 둘러싼 국내 관심도 고조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30일 방한한 존 펠런 미 해군성 장관이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잇따라 방문하며 미 해군 MRO 수주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국내 조선사 중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 Master Ship Repair Agreement)을 체결했다. 한화오션은 이미 2건의 미 함정 MRO 사업을 수주했으며, HD현대는 올해 2~3건의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는 군수지원함 정비 사업에 한해 MSRA 없이도 입찰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완화되면서 미 해군 MRO사업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문제는 전투함이다. 미 해군의 '전투함' MRO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적절한 등급의 FCL을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기밀 정보를 다루는 계약을 수행하는 기업에 대해선 시설인증보안(FCL)을 요구한다. 

      이는 미국 정부의 기밀 정보를 취급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로 등급은 기밀(Confidential), 비밀(Secret), 최상위 비밀(Top Secret) 등으로 구분된다. FCL이 없을 경우 입찰제안서(RFP)와 같은 입찰 참여에 필요한 기본적인 서류나 기술 사양조차 열람할 수 없다. 미 해군 전투함 MRO 및 건조도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 조선사 중 FCL을 획득한 곳은 없다. 한 방위산업 전문위원은 "한국 조선업체들 중 미국의 FCL을 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며 "전략적 흐름 속 미 군함 시장이라는 엄청나게 큰 시장이 열리지만 구체적 시장 조사, 법적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기회를 모두 놓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FCL을 신청한 기업은 한화그룹이 유일하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2월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이후, 필리조선소에 대한 FCL을 미 당국에 신청했다. 신청이 승인될 경우, 전투함 건조 및 유지보수에 대한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FCL을 최대한 빠르게 획득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단 입장이다. 

      미 정부가 최근 함정 조달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어 일정 단축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FCL은 통상 승인까지 1~5년이 걸리는 복잡한 절차로 평가된다. 방위산업 전문가는 "FCL의 경우 보안체계 등을 미국 기준으로 맞춰야 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하는 등 구조가 복잡하다"며 "국내 업체가 자격을 다 갖췄다고 해도 미 정부가 받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등 변수가 있다"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이미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쉬라호' 정비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며, 현재는 유류보급함 '유콘함' 정비도 진행 중이다. 회사는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윌리쉬라호 MRO의 경우)도면 없이 리버스 엔지니어링만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며 기술력을 강조했고, 해당 사례는 미 해군 공식 홈페이지에도 우수 사례로 소개됐다.

      다만 해당 함정들은 상선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지원함이기에 도면 없이도 정비가 비교적 수월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른 방산업계 전문가는 "군수지원함과 유류보급함은 상선과 비슷한 구조라 문제점 발견이 용이했을 수 있지만 전투함은 다르다"며 "무기체계 업그레이드 등을 위해서도 설계도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FCL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내 조선소를 보유하지 않고 있어, 조선소 인수 여부가 우선 논의 대상이다. HD현대는 지난 4월 7일 미국의 방산 조선업체인 헌팅턴 잉걸스와 양해각서(MOU)을 맺고, 잉걸스 조선소의 공급망 일부로 참여하며 현지 시장 진입을 단계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국 내 조선소 인수와 관련해선 다방면으로 검토중이지만 확정된 건 없다는 입장이다. 

      미 함정 MRO 사업을 두고 국내 조선업체 간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업계 안팎에선 이 점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HJ중공업은 올해 초 MSRA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성중공업과 케이조선도 미 해군 MRO 사업 진입을 검토하고 있다. 

      방산업 연구위원은 "미 함정 MRO 사업에서 한국 업체가 받아올 수 있는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국내 업체들이 경쟁하다 보면 출혈경쟁이 생길 수 있다"며 "경쟁이 격화할 경우 저가 수주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