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사 투자금 조달 및 재무개선 급한데
고민 복잡한 SK이노, 새로운 기법 모색
LG화학은 자산 매각 등 전통 수단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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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이차전지 침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두 회사는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고 있는데 그 방향에선 미묘한 차이가 엿보이고 있다. 다양한 재무 기법을 활용해 본 SK이노베이션은 보다 새로운 묘책을 원하는 반면, LG화학은 상대적으로 자산 매각 등 전통적인 방법을 선호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매출 21조1466억원, 영업손실 466억원을 기록했다. E&S 합병 실적 반영되며 매출은 늘었지만 개별 사업부문 손실에 적자전환했다. 화학사업은 공급과잉에 따른 구조적 불황을 겪고 있다. 이차전지는 전기차 수요가 부진한 중에 막대한 투자 부담까지 있다. 경영진이 '생존부등식'(Value〉Price〉Cost)을 강조하지만 당장 사업적으로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다양한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자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다만 선택지가 많지는 않은 분위기다. 회사채 발행은 기존 부채를 갈아끼우는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가수익스왑(PRS), 토탈리턴스왑(TRS)도 당장의 부담을 잠시 뒤로 미루는 수단에 그친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자회사 매각도 말만 무성할 뿐 진척이 없다.
SK㈜의 증자를 바라자니 모회사 주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KKR의 SK E&S 투자처럼 우선주 발행이 최선의 방법으로 꼽히지만 본업이 부진한 터라 그런 투자자가 있을지 미지수다. 영구채 등 자본성이 인정되는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수단이란 평가다. 최근 증권사들과 함께 수천억원 규모 영구채 발행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련의 작업들로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온은 수많은 재무적투자자(FI) 자금을 유치하며 2026년까지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지만 적격상장(Q-IPO)은 낙관하기 어렵다. 차라리 FI 자금을 일찍 돌려줄 길을 찾는 편이 낫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필요한 자금만 수조원에 달한다.
사정이 이러니 SK이노베이션은 증권사들에 '새로운' 자금 조달 및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모색해 달라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재무 기법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며 전문성을 쌓았지만 기존에 활용한 수단들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SK온 상장까지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하루라도 빨리 FI 자금을 상환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다양한 조달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1분기 매출 12조171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 4470억원을 올려 흑자전환했다. SK이노베이션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지만 고민의 결은 비슷하다. 석유화학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올해 이차전지 설비 투자 부담은 수조원에 이른다. 업황이 살아날 때까지 계속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LG화학은 최근 해수담수화용 역삼투막(RO) 멤브레인을 제조하는 워터솔루션 사업부를 글랜우드PE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거래 규모는 1조원 이상으로 작지 않은데 캡티브 물량이 있기 때문에 사업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다. 글랜우드PE는 LG화학의 진단사업부(현 인비트로스)를 인수한 연이 있다. 회사는 연초부터 에스테틱 사업부 매각 작업도 진행 중이다. 작년 물밑에서 시장 상황을 살피다가 올해 주관사를 선정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LG화학은 대체로 자산 매각과 같은 전통적인 재무개선 방안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러 금융사가 다양한 자금 조달 사례와 방안들을 제시하지만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보수적이고 신중한 그룹 문화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자산 매각 외 방안을 활용한 사례가 없지 않지만 아주 성과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LG화학은 화학사업을 물적분할 해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려 했는데, 협상 조건을 조율하는 데 애를 먹었고 현재는 공회전 상태다. 회사는 2023년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바탕으로 20억달러 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이 중 절반 물량의 풋옵션 행사 기일이 목전이라 상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세운 합작사(JV) 지분을 인수했고, 11조원 규모 인도네시아 투자 계획을 철회하는 등 전략 수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자금조달 수단 외에 다른 새로운 방안이 없느냐는 문의를 한다"며 "반면 LG화학은 SK처럼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기보다는 자산 매각 등 전통적인 수단을 활용하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