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금 성격 강한 영구채, 재무구조 개선과 거리 멀어
자본성 조달 규모만 8조원…재무적 변동성 내재
국내 신평3사 등급 하향 트리거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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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차입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대 7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 검토에 나섰지만 신용등급 하향 압박을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용평가사에서 차입금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신종자본증권 전량을 자본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데다 배터리 부문의 대규모 투자로 채무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다. 또 이미 모든 신평사들의 하향 트리거를 대부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은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북빌딩(수요예측) 단계에 돌입했다.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주요 대형 증권사들로부터 제안서를 접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자본증권은 부채의 일종이지만 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거나 콜옵션(조기상환권)이 발행사에 있다는 특성 때문에 회사채와 달리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 인수합병으로 차입부담이 크게 늘었다. 또 배터리 사업 부진, 석유화학 불황 장기화, 정제마진 악화 등으로 올해 1분기 주요 사업 부문에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 높아지는 부채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차입금 일부를 자본으로 전환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207%로, 지난해 말(179%)과 비교했을 때 28%포인트 증가했다.
신종자본증권 카드를 선택했으나, 실질적인 신용도 방어 여력은 미지수다. 신평사들은 신종자본증권 전량을 자본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국내에서 신종자본증권은 3~5년 뒤 콜옵션 조건을 붙여 발행해 콜옵션을 행사해 상환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차입금의 성격이 강한 만큼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의 노치업 조건 등을 뜯어보고 자본인정비율을 산정해서 평가한다"며 "자본인정비율은 대개 60%, 80% 등으로 각각의 케이스마다 다르며, 과거에는 0%인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평사 연구원은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채무적 성격이 일정 수준 들어간 것으로 평가하며 구체적인 퍼센티지를 외부에 공표하지는 않는다"며 "이자, 배당, 콜옵션 등을 고려해 차입금 성격과 자본적 성격을 구분한다"고 했다.
높은 발행금리도 부담이다. 실제로 자회사인 SK온이 지난해 6월 총 5000억원 규모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금리는 6.424%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 4월 조달한 공모 회사채 발행금리가 2.9~3.0%대인 점을 감안했을 때 300bp(1bp=0.01%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가 지난 8일 진행한 '그룹별 크레딧 이슈 점검' 웹 세미나에서도 SK이노베이션의 자금조달 방식에 대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수명 한신평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재무적 변동성이 내재된 자본성 자본조달 규모는 지난해 말 연결기준 약 8조원으로 그룹 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또 현금 확보를 위해 구매 카드를 활용하는데, 미지급금도 지난해 말 기준 3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차입금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 재무적 불확실성과 관련해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올해 상반기 정기평가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AA(안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등급 하향 트리거를 3사 모두 충족한 상태로 추가 등급 하향 가능성이 존재한다.
신평사들은 일제히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배수 지표를 등급 하향 검토 요인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말 연결기준 SK이노베이션의 해당 지표는 11.2배(SK E&S EBITDA 실적치는 합병 이후 2개월 치만 반영)로 집계됐다. 한국기업평가는 4배 초과, 한신평은 7배 초과, NICE(나이스)신용평가는 5배 초과로 각 사별로 차이는 존재하지만, 하향 변동 요건에 충족한 상태다.
실제로 지난 3월 글로벌 신평사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 신용도를 기존 투자적격등급인 'Baa3'에서 투기등급인 'Ba1'으로 한 노치 낮추기도 했다. 향후 1~2년간 배터리 부문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충분한 부채 감축 조치를 실행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트리거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트리거를 건드렸다는 건 신평사 내부에서도 등급을 두고 고민을 한다는 의미"라며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데, 4월에 이미 정평을 마쳤으니 올해 안에 반전이 있을지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