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 정비 및 기초지수 등 인프라 부재…"현실화 어렵다" 신중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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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가능성이 투자업계 이슈로 떠올랐다. 주요 정당이 앞다퉈 '도입'을 시사하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최근 현물 ETF 도입과 통합감시시스템 구축을 약속했고, 국민의힘 역시 '디지털 가상자산 7대 과제'에 정부기관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및 ETF 거래 지원을 포함시켰다.
문제는 대선 이후 가상자산 ETF 상품이 곧바로 출시될 수 있느냐다. 운용업계는 '기술적'으로는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상품화해 판매가 가능해지려면 추가적인 법적·제도적 인프라 정비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11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현재 주요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내부적으로 가상자산 관련 ETF와 관련한 스터디 및 상품 설계 준비를 거의 끝마친 상황이다. 지난해 1월 미국 증시에 비트코인 ETF가 출시된 이후 1년 반에 가까운 시일이 지났고, 그 사이 국내 정치권에서도 여러차례 관련 상품 출시에 대해 전향적인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상품 설계와 운용 역량은 이미 충분하다"면서 "가상자산 ETF는 상품 다양성과 투자 수요 대응 측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권교체 후 금융당국에서 가상자산 ETF 출시를 허용한다 해서 곧바로 상품이 출시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법,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등 관련 법령이 얽혀있는데다 ETF 출시에 필요한 기초지수조차 마련돼있지 않은 까닭이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기초자산으로 명확히 인정되지 않는 등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상품화 논의는 어렵다"며 "이용자보호법 개정 등 정부 차원의 제도적 기반 마련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일단 먼저 신뢰성 있는 지수 체계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운용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현재 국내에서 산출되는 지수로는 업비트의 'UBCI', 웨이브릿지의 'KOVAX15' 등이 있으나, 단일 거래소 기반이거나 알트코인을 포함하는 구조 탓에 대표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가상자산 ETF 출시가 속도를 내려면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을 기초로 복수 거래소 데이터를 반영한 대표성 있는 지수를 한국거래소 차원에서 미리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해외에서는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CF벤치마크가 공동 개발한 'CF 비트코인 레퍼런스 레이트(BRR)' 지수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지수는 복수의 글로벌 거래소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일 산출되며, 영국 금융감독청(FCA)의 규제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수탁 체계, 실물 보관 인프라, 유동성공급자(LP) 확보 등 다층적인 법적·시장적 인프라가 갖춰져야만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한국거래소는 아직 지수 산출이나 상품 상장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관련 동향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자산 관련 지수나 상품 정책의 외부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향후 정부의 제도적 방향이 명확해지면 시장 수요와 정책 환경에 맞춰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역시 신중한 접근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제도화 논의 자체에 대해선 점진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ETF 관련 공약들을 보면 방향성은 유사하지만, 추진 속도에서 차이가 있는 듯하다"며 "다음 정부가 출범하면 정책 조율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업계는 가상자산 현물 ETF의 도입을 단순한 신규 상품 도입을 넘어, 국내 ETF 시장의 구조적 경쟁력을 높일 기회로 보고 있다. 거래소 기반 지수 체계, 공시 요건, LP 유인책 등을 함께 설계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자금 유치의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가상자산 현물 ETF는 단순히 '코인 투자 허용'이 아니라, 자본시장 혁신을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며 "정치권에서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는 만큼, 제도와 인프라가 순차적으로 정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