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시점 놓쳐서 조달 불확실성, 희석 부담 눈덩이
하필 美 보조금 축소 가능성 부상 직후에 증자 결정 발표
"포스코홀딩스 허락 못 받아서"…허탈한 실기의 최종배경
대안도 없는데 도대체 왜?…의사결정 구조 논란 불가피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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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퓨처엠이 결국 조 단위 유상증자에 나선다. "할 거면 진작 했어야지" 하는 탄식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회사가 직접 증자를 검토한지 2년여 만이다. 그동안 주가는 반의반 이하로 빠졌고, 마중물을 대겠다던 미국은 지갑을 닫고 있다. 포스코홀딩스가 머뭇대는 사이 좋은 패는 다 사라지고 조달 부담은 있는 대로 늘어났는데, 부담은 전체 주주가 나란히 짊어지게 됐다.
14일 포스코퓨처엠 주가는 전일보다 4.00% 빠진 11만530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1년 내 최고점(26만4000원) 대비 반토막 이하, 2년 내 최고점(56만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13일 1조10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으니 당분간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풀이된다.
증자가 꼭 필요하다는 진단에는 이견을 달기 어렵다. 포스코퓨처엠을 비롯해 국내 2차전지 산업 전체가 언제 정상화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은 예정된 투자를 이어가야만 한다. 지난 3년 동안 3조원 이상 순차입금을 늘리며 살림을 지탱해왔는데 외형도 상각전영업익(EBITDA)도 쪼그라들고 있으니 이제는 자본을 채워야만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감독원이 포스코퓨처엠의 유상증자 결정을 중점심사한다고 하는데, 선거철 소액주주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엉뚱한 곳에 불필요하게 돋보기를 들이미는 모양새다. 재무 관리가 시급하다보니 국내외 신용평가사들도 유상증자가 그나마 합리적이고 건전한 선택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작년 말 회사의 총차입금만 3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금은 당장 주가가 떨어진다는 단기적 볼멘소리보다 채권자를 비롯해 업계 전반으로 위기감이 퍼지지 않도록 자본확충부터 마무리 짓는 게 우선이다.
진짜 문제 삼아야 하는 건 대규모 증자 자체보다도 포스코퓨처엠이 이를 결정한 시점이다.
회사는 분명히 2년여 전부터 유상증자를 비롯한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금융권과 소통해왔다. 투자자 설명회(IR) 자리에서 직접 유상증자가 필요하다고 투명하게 밝히기도 했다. 다수 투자은행(IB) 실무자들이 직접 회사와 논의해왔고, 필요하다면 외부의 재무적 투자자(FI)를 연결해 주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상장사로서 당연한 행보였다.
그러나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대규모 증자 부담을 완화시켜줄 변수들은 어느새 종적을 감췄다.
기왕 유상증자가 필요하다면 주가가 상대적으로 높을 때 추진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같은 금액을 조달해도 주가가 낮으면 더 많은 신주를 발행해야 한다.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이번에 발표된 유상증자 계획도 작년에 추진했다면 신주 발행 물량은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가가 2년 넘게 내리막만 탔는데 이제 와서 유상증자에 나선다고 하니 희석 부담만큼이나 기존 주주들의 원성도 늘어나게 됐다.
주가가 빠지는 동안 미국 정부의 현지 생산세액보조금(AMPC) 축소 가능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포스코퓨처엠이 유상증자를 결의하기 직전 미국 행정부가 재생에너지 및 기후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의 2026 회계연도 예산안을 내놨다. 산업 전체의 중장기 성장성과 투자 심리를 지탱할 핵심 변수가 위태로워진 때에 증자를 발표하며 겹악재가 된 형국이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전방 부진으로 소재사가 더 크게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나, 트럼프 정부가 보조금을 줄일 거라는 전망이 지난 연말부터 업계 내에서 공공연했다"라며 "삼성SDI가 작년 연말 증자 카드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실기(失期)의 최종 책임은 최대주주인 포스코홀딩스를 향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증자 문제로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포스코홀딩스가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다는 것도 업계 내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이번 유상증자에서 포스코퓨처엠 지분율(59.7%) 만큼인 5256억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퓨처엠 외 다른 2차전지 소재사 증자분을 포함하면 그룹의 총 투자액은 9226억원이다. 작년부터 포스코홀딩스가 구조개편 대상 사업을 정리해 누적으로 창출했다는 현금 9491억원을 거의 그대로 내놓게 된 셈이다.
작년 포스코퓨처엠이 임시방편으로 영구채를 발행한 것도 결국엔 이자 부담만 더 키운 악수가 됐다. 그룹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긴 한데, 임기가 있는 경영진에 비해 양사 투자자들이 더 깊숙이 묻히게 된 상황이다. 실제로 시장에선 마땅한 대안도 없으면서 이런 상황을 빚어낸 포스코그룹의 의사결정 체계와 장인화 회장 리더십에 대한 회의감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유상증자 주관사단의 한 인사는 "장인화 회장이 새로 선임됐다는 이유로, 포스코홀딩스가 허락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증자 부담만 눈덩이처럼 커졌다"라며 "증자를 결정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까지 왔다고 봤는데, 결국 퓨처엠 주주 전체와 모회사 투자자까지 실기 책임을 골고루 나눠지게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