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손보 모든 계약, 5대 손보사로 계약이전 돌입
당국, 업계 '자율성' 강조 뒤 책임에선 쏙 빠져
보험사 청산 때마다 업계에 떠넘기는 '불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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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는 파산하지 않는다, 계약은 더 좋은 회사가 인수한다, 그래서 판 거죠."
과거 MG손해보험의 상품을 판매했던 보험설계사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2018년 경영개선권고에서 시작해 2022년 부실금융기관 지정, 3차례의 매각 실패, 신규 영업 정지까지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보험업계선 그 끝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계약 조건의 변동 없이 업계 상위 보험사가 인수하는 것.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MG손해보험에 대한 신규 영업을 정지하고 계약이전 절차에 돌입했다. MG손보의 모든 계약이 '가교 보험사'를 거쳐 5대 주요 손보사(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보, DB손보, 메리츠화재)로 이전된다.
보험사가 청산되는 건 2003년 리젠트화재 이후 22년 만이다. 당시에도 업계 1~5위였던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보, DB손보, 메리츠화재가 리젠트화재의 보험을 나눠 가져갔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모든 계약을, 기존과 같은 조건으로 인수했다.
보험업계로선 좋지 않은 선례가 또 생겼다는 평가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고 매각마저 실패하더라도 당국이 개입하는 이상 더 크고 좋은 회사가 알아서 계약을 가져간다는 불문율을 재확인했다.
부실 경영 논란에도 MG손보의 상품이 계속 판매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적지않다. 보험 대리점(GA) 등 판매채널은 상품 자체가 소비자에게 유리한 데다 과거 사례를 비춰봤을 때 회사가 망하더라도 보험금을 떼일 걱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MG손보는 단기 매출 확보를 위해 더 싸고 보장이 풍성한 '미끼 상품'을 내놨다. 대형 손보사의 유사한 상품과 비교하면 월 보험료가 1만~2만원가량 저렴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과거 질병 이력이 있는 유병자나 고령자의 가입도 웬만하면 승인했다고 한다. 이렇게 가입자 121만명, 보험계약 151만건(3월 말 기준)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계약이 장기적으론 손해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 작년 MG손보의 보험손익은 마이너스(-) 594억원으로 적자전환 했다.
이번 계약이전은 22년전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 될 전망이다. 보험기간이 1년인 자동차보험을 위주로 판매했던 리젠트화재와 달리 MG손보 포트폴리오는 90%가 장기보험이다. 복잡한 조건 등을 확인하고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만 1년가량 필요하다.
어느 계약을 어떤 회사가 가져갈 지에 대한 합의도 도출해야 한다. 리젠트화재 때는 삼성화재가 장기보험을 모두 인수하기로 해 분배에 대한 갈등이 없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MG손보는 수년간 당장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땡처리로 상품을 판매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개중에서도 나은 구조의 계약을 찾아 나눠가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수년간 MG손보의 부실 경영을 방관하며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보험사가 청산할 때마다 상위사에 그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 또한 부실 보험사와 소비자의 모럴 해저드를 부추긴다는 쓴 소리가 많다.
한 증권사 보험 담당 연구원은 가교 보험사 관련 소식을 접한 뒤 "어차피 회사가 망해도 다 보전해줄 텐데 튼튼하고 우량한 회사 찾아다닐 필요 없이 곤경에 처한 회사가 미끼 상품을 쏟아낼 때 가입하면 되겠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금융위는 이날 "5대 보험사는 MG손보의 청‧파산이 이뤄질 경우 보험산업의 신뢰가 크게 저하되는 등 업계 전반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며 "자율적인 검토과정을 거쳐 계약이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MG손보 부실을 해결했다는 말이다. 금융당국의 책임론 역시 적지 않지만, 금융위는 "경영개선권고‧요구‧명령을 내렸다"는 말로 이를 갈음했다. 결국 MG손보의 부실은 아무 관련 없는 5대 대형 손보사의 주주들과, 가입자들이 나눠지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