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너티는 GIC·ADIA 잔류 여부 주목
회수지연·인력이탈 계속되는 앵커PE
다음 ‘메가펀드’는? 신흥강자 부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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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에 기반을 둔 아시아 리즈널(Regional) PEF들의 펀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MBK파트너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등 대표 운용사들이 실적 부진과 세대교체, 포트폴리오 관리 등의 과제를 겪는 가운데, 해외 주요 출자자(LP)들의 반응도 한층 냉랭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 바이아웃 ‘잭팟’ 사례로 쏠렸던 글로벌 기관들의 러브콜은 이젠 예외적이며, 그 자리를 인프라·크레딧·스페셜시추에이션 펀드가 빠르게 채워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가 추진 중인 6호 펀드에 대해 주요 해외 LP들 구성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MBK의 든든한 우군을 자처했던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5호 펀드에서 5억 달러를 출자했지만, 6호 펀드에서는 약 1억7500만 달러로 대폭 축소된 출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CPPIB가 MBK파트너스 출자 규모를 줄인 것은 PE 부문에 대한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작년 초에 출자 규모를 줄이고 나서, 추가적인 출자에 나섰다는 소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일각에선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오랜 연이 있는 김수이 CPPIB글로벌 PE대표의 이탈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평가한다. 김 대표는 CPPIB를 떠나서 현재 현대자동차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MBK는 이번 펀드의 목표 규모를 70억 달러로 제시하고 있으며, 북미·중화권 LP들과 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 따르면 6호 펀드에서 중국 외환투자공사(CIC)가 미국의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와 함께 주요 출자자로 부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8조원 정도를 모집한 6호 펀드에서 CIC의 비중은 전체 펀드의 5% 내외 수준으로 알려졌다. 약 4000억~5000억원 규모다. 그간 '중국펀드' 논란이 나올 때마다 이를 반박했는데 이젠 애매해진 상황인 셈.
MBK가 국내 펀딩에 나서면서 지역별로는 북미, 중동, 싱가폴, 한국, 중국 포함 아시아 순으로 LP들이 6호 펀드에 참여했다.
MBK가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펀딩에 착수해 ‘홈플러스 리스크’를 상당 부분 피해간 것과 달리, 어피너티는 창업자 이탈과 지배구조 변화 이후 처음 나서는 펀딩에서 여러 우려를 마주하고 있다.
어피너티는 현재 7년 만에 펀드레이징에 돌입했으며, 업계에서는 기존 출자자인 싱가포르투자청(GIC), 아부다비투자청(ADIA)의 연속 출자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어피너티는 과거 OB맥주 매각(2014년, 58억 달러 매각, 약 40억 달러 차익), 멜론 매각(카카오에 1조2000억원 차익) 등으로 국내 PEF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지만, 최근에는 굵직한 엑시트 성과가 드문 상황이다.
여기에 박영택·이철주·이상훈 등 대표 창업자가 모두 자리를 떠났고, K.Y. 탕 회장 역시 고령으로 영향력에 대한 의문이 많아, LP들 입장에선 운용역의 연속성과 전략적 방향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펀드레이징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홍콩의 퀴니 호(Queenie Ho) 파트너의 거취도 관심사다.
여기에 최근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사모펀드들에 대한 전방위 특별 세무조사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MBK파트너스에 이어 어피니티까지 조사 대상에 올리면서 대외변수도 더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어피너티는 기존 펀드 소진이 지연된 이유와 운용역 부재의 리스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GIC와 ADIA 같은 장기 파트너들이 잔류할지 여부가 이번 펀드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ADIA가 어피니티에 출자를 계속하지 않겠다는 기조가 있고, GIC도 실적 등의 이유로 잔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며 “어피니티가 펀딩을 위해 한국 시장을 두드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어피너티는 “6호펀드는 아직 펀드레이징 시작 전으로, 시작 시점은 결정된 바 없다”라며 “퀴니 호는 현재 재직 중이다”라고 말했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포트폴리오 관리 측면에서 뚜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컬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메타엠 등 주요 투자기업의 성과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서 LP들 사이에서의 평판도 하락세다. 2021년 결성한 4호 펀드(16억 달러 규모)가 여전히 소진 중이지만, 업계에선 “다음 펀드 조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핵심 인력의 이탈설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점은 LP 신뢰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는 앵커PE의 조직적 안정성과 운용 전략의 일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3대 리즈널 PEF의 펀딩 부진은 한국 시장에 대한 글로벌 LP들의 시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한 때 K-PEF의 역동성과 높은 내부수익률(IRR)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LP들의 출자 방향이 ▲장기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인프라 펀드 ▲중위험·중수익의 크레딧 펀드 ▲시장 변동에 대응 가능한 스페셜시추에이션 펀드 등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한 글로벌 LP 관계자는 “과거엔 한국 리즈널 PEF에 대한 프리미엄이 있었다면, 지금은 특정 국가보다 전략의 차별성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우선적으로 평가한다”며 “펀드매니저의 실적 트랙레코드와 조직 안정성에 대한 평가 기준도 훨씬 엄격해졌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PEF 한 관계자 역시 “최근 해외 LP 미팅에서도 한국 시장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아졌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며 “지정학적으로 한국의 매력이 감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심은 리즈널 PEF의 빈자리를 누가 채우느냐다.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은 포트폴리오에서 배제 할 수 없는 시장이란 점에서 국내 PEF들이 이들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분주하다. 메가펀드가 되기 위해선 해외 LP의 출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물 밑에서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PEF업계 관계자는 “글랜우드PE를 중심으로 신흥 PEF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라며 “이번 기회에 해외 LP에 눈도장을 받는 곳이 메가펀드로 성장할 모멘텀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