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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국내 영화산업은 코로나 이후 침체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 운영사)와 메가박스중앙(메가박스 운영사)의 합병 추진 소식에 영화계는 100년 이상 유지된 산업의 종말이 눈 앞에 왔음을 직시하는 분위기다.
표면적으로는 두 회사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듯하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스크린 수를 합치면 1700개에 육박, 업계 1위인 CJ CGV(1300여개)를 뛰어 넘으면서 1강2중 체제에서 빅2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생겼다.
그 배경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코로나 이후 관객은 급감했고 티켓값은 훌쩍 튀어올랐다. 영화관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에 빠졌다.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콘텐츠 시장의 주연으로 대체된 것이 결정타였다. 이젠 1시간 이상 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영상을 보고만 있을 관객은 극소수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수명을 다 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선 무슨 수를 두더라도 둬야 하는 상황이다.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더 이상 각자도생은 어렵고 규모를 키워 투자를 유치하고 그걸로 다시 콘텐츠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 선순환을 만들려면 합병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두 회사 대표들이 각각의 회사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이 현재 극장 영화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특히 국내 시장의 경우는 국산 영화의 양적, 질적 공급 부족이 계속되어, 다른 나라보다 회복 속도가 현저히 낮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전 임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고통스럽지만 강력한 운영효율화를 진행해 왔으나, 국내 영화관객 감소로 인한 손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롯데컬처웍스-
“장기화되고 있는 침체기로 인해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생존뿐 아니라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이제는 판을 뒤흔드는 시도까지 해 봐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말 그대로 이번 합병 계획 발표는 조직을 살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일하는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결단입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 위함입니다” –메가박스중앙-
메일의 내용을 두고 안팎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냉정하다.
“복싱 경기장에서 하얀 타월을 던진 것마냥 사실상 끝난 거다”
“전례가 없는 동반 퇴장이다”
두 회사의 합병 방식을 두고도 말이 많다. 롯데컬처웍스의 지분 86.37%를 보유하고 있는 롯데쇼핑과 메가박스 지분의 95.98%를 가지고 있는 콘텐트리중앙이 주축이 돼 양사의 합병을 진행한다. 양사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합작법인을 꾸린다고 하는데 롯데그룹과 중앙그룹이 각각 절반씩 보유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각각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보유 지분을 모두 출자해 합병 비율을 1대1로 가져간다는 거다.
두 회사는 분명 체급 차이가 있다. 롯데시네마는 작년 연결기준 매출 4517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977억원을 기록했고 메가박스는 각각 3533억원, 535억원이었다. 보유 상영관 숫자도 롯데는 극장수 133개, 메가박스는 115개로 롯데가 많다.
일각에선 최근 콘텐츠 제작과 배급 능력에서 중앙이 롯데보다 다소 우위에 있기 때문에 물리적 상영관 수만으로 평가하긴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M&A 딜을 해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이렇게도 쉽게 합병 비율 1대1로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말 이 산업의 미래가 충분히 남아있고 합병을 통해 재기를 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주도권을 갖고 오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했을 거라는 얘기다. 이 딜에선 그게 빠져있다. 오히려 상대가 떠안아주길 바라는 느낌마저 든다.
이렇다보니 시장에서도 이번 딜을 두고 두 그룹이 영화관 사업에서 사실상 엑시트를 노리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현재 두 그룹 사정상으로는 충분히 납득할만하다는 거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은 물론이거니와 콘텐트리중앙 입장에서도 적자사업을 떼어냄으로써 얻는 재무적 효과가 분명히 있다”라며 “합작법인을 만들어 외부 투자 유치를 받아 정리할 수 있으면 최선일 수 있다. 물론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다음 시선은 자연스레 업계 1위 CJ CGV로 향한다. 중국과 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에선 호조를 보이고는 있다지만 국내 시장에선 여전히 부진하다. CJ CGV도 한 때 CJ ENM의 콘텐츠 파워 덕을 톡톡히 봤지만 CJ ENM도 예전같지 않다. CJ CGV나 CJ ENM이나 그룹의 걱정거리가 된지 꽤 오래됐고 마땅히 해결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롯데와 중앙의 고민이나 CJ 고민이나 결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CJ그룹도 콘텐츠 시장의 방향성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안팎에서 나오지만 정작 들리는 건 ‘집안 사람들’ 관련 얘기들이다.
‘영화’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다양한 상영관들이 사라진다는 건 분명 슬픈 소식이다. 더군다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 할 테고 말이다. 영화관 산업의 종말은 영화의 ‘미학’도 사라짐을 의미하며 이는 관련 종사자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조회수 만능주의는 예술과는 대척점에 있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나오는 마지막 키스 장면들도 이젠 TV와 태블릿, 스마트폰으로 보며 추억팔이를 할지도 모른다. 기업들에는 이 모든 것들이 정리 대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입력 2025.05.19 07:00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