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협상 없이 현지 투자 압박만 받는 국내 기업들
정부 무주공산 상태 인식 확산…미국도 "상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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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조원 규모의 글로벌 방산 시장이 열린다는 기대감에 국내 조선업과 방산업의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이 미국 해군력 확충을 위해 군함을 한국 등 해외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에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조선사들이 수혜 기대주로 떠오르며 투자자들의 관심도 쏠린다.
다만 실제 현장 분위기는 미지근하다. 기대와는 달리 미 국방부와 국내 기업들 간 가시적인 계약 논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기 대선으로 인한 정권 공백 속 대외 협상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는 게 대관 및 방산업계의 설명이다.
최근 HD현대와 한화오션 등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미국 상무부 및 해군성과 연쇄적으로 접촉했다. 한화오션은 정인섭 사장이 직접 방미해 필리조선소 관련 논의를 시도했고, HD현대는 기술자문급 인사를 통해 대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실질적인 수주 협상은 아직 거론되지 않은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미국 현지 투자 유치를 유도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구체적인 수주나 지원금 등 수혜와 관련된 내용은 오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의사 결정 공백'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기조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현재 한국 정부의 공백 상황을 고려하여 '거래 상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권한대행 및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이 방산, 조선 분야 협상을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관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공백 상태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 측도 대선 이전엔 움직이지 않겠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국방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실 등을 통해 현지와의 협상 및 대외적인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의원실의 영향력 또한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국내 방산·조선주의 기대감을 자극한 배경에는 공화당이 상정한 법안이 있다. 해당 법안은 미 해군 군함의 조달을 미국이 아닌 우방국의 조선소에서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과의 해양 패권 경쟁이 심화되며 미 조선 능력만으론 부족하다는 현실 인식이 반영된 조치다.
다만 이 같은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더라도 실질적인 예산 확보와 국방부의 구매 정책 전환이 없으면 수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지 반응은 제한적이다. 국내에서는 기대감에 앞서 주가가 반응하고 있지만, 실무선에서는 아직 진전이 없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방산업계의 기대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등이 방산 지원을 내세우면서 국내 기대감을 높였는데, 시장의 불확실성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현재 방산업체들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시나리오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