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심사 문턱 높아지기 전 사업 인가 막차 열풍
주기적으로 터지는 금융사고…리스크는 현재 진행 중
모험자본 공급 역할…그에 걸맞은 책임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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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금융감독원장으로 하마평 도는 사람이 있을까요? 금감원장은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라 새 정부 사람이 올 텐데, 새로운 금감원장과 정책 방향성이 요즘 주요 관심사입니다." (한 증권사 임원)
증권사들은 차기 금감원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발행어음 사업자 최종 결정 권한이 금감원장에게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증권사 5곳이 발행어음 라이선스 취득 채비에 돌입했다. 오는 3분기 단기금융업 인가를 신청해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발행어음은 만기 1년 이내 약정된 수익률로 발행한 어음이다. 약정 수익률은 약 2~4%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은행보다 조금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증권사 별도기준 자기자본 4조원을 넘겨야 인가를 신청할 수 있으며, 자기자본의 200%까지 발행이 가능하다.
현재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한 삼성증권(2024년 말 기준 6조9000억원), 메리츠증권(6조3000억원), 하나증권(6조원), 신한투자증권(5조5000억원), 키움증권(5조원) 등 5곳이 발행어음 사업 진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5곳 증권사 모두 발행어음 사업 관련 태스크포스(TF) 또는 회의체를 꾸려서 준비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내년부터는 심사 문턱이 높아진다. 지정 요건에 대주주 제재 이력 요건, 2년 이상 사업 영위 등 추가 조건이 붙게 된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올해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사업 인가를 받을 수 있는 막차 시간인 셈이다. 금감원은 오는 3분기 중 발행어음 사업자 신청을 접수한 뒤 연내 지정할 계획이다.
발행어음 사업을 준비 중인 실무진들은 금융당국의 인허가 사업이다 보니 새로운 금감원장의 시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새 정부 라인 인사가 차기 금감원장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어느 쪽이 유리한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분위기다.
다만 주기적으로 터지는 각종 금융사고가 발목을 잡는다. 금융당국은 증권사의 단순한 재무 요건뿐만 아니라 내부통제 이슈에 대한 재발 방지책, 대주주 적격성 등을 기반으로 사업 심사를 실시한다. 실제로 5곳 모두 이와 관련한 리스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가장 최근 문제가 발생한 곳은 신한투자증권이다. 지난해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사고로 금융당국의 제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해당 사고 이후 내부통제에 고삐를 죄며 사업 확장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으나, 내년부터 발행어음 사업 관련 심사 문턱이 높아진다는 소식에 신규 사업 도전을 서둘렀다는 후문이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이화전기 신주인수권부사채(BW) 거래와 관련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키움증권은 지난 2023년 라덕연 대표가 차액결제거래(CFD) 계좌 활용해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에도 해당 사고로 인해 초대형 IB 사업 추진이 중단된 바 있다. 하나증권은 채권형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랩·신탁) 계좌에서 채권 돌려막기를 했다는 이유로 30억원대의 과태료와 기관경고의 중징계를 받았다.
삼성증권은 계열사 임직원에 대한 신용공여 금지 법규 위반으로 지난 2022년 기관주의 제재를 통보받았다. 그룹 계열 임원에게 주식담보대출과 신용융자를 제공해 준 혐의다. 삼성증권은 이미 지난 2017년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지정됐으나, 대주주 요건 등의 문제로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하지 못했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 등이 무죄로 결론 나면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일부 해소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발행어음은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여러 증권사가 한꺼번에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아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양당의 정책 방향과도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양당은 핵심 경제 공약으로 주식시장 활성화와 모험자본 육성을 강조했다.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의 25%를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하는데, 중소·중견 기업 자금 공급, A급 이하 채무증권, 하이일드 펀드 등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 모험자본 공급 차원에서 금융당국이 증권사 북을 확장해 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자본시장에서 증권사의 권한이 커지는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점이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금융사고를 바라볼 때 차기 금감원장의 입에만 주목하기보다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손질해 왔는지 점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