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환원에 더해 '지배구조 개선', '소액주주 보호'에 무게
외국인 투자 유도 공약은 '빈수레'...일부 정책은 이미 영향
'말 보다는 행동'...금융당국 등 인선 지켜볼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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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가 집계하는 'KRX 증권' 지수는 3월 이후 무려 29%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폭(4%)의 7배에 이른다. 대장주로 꼽히는 미래에셋증권의 주가는 4월 초 저점에서 불과 한 달 새 60% 급등했다. KRX 증권 지수는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한 5월 이후로도 10% 추가 상승하며 '대통령선거 수혜 섹터' 대접을 받고 있다.
증권주의 강세는 자본시장 육성 정책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국내 주식 투자자 수(국내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개인 기준)가 2020년 900만명대에서 2024년말 기준 1400만명으로 급증하며, 무시할 수 없는 '표 밭'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유력 후보들이 앞다퉈 '증시 부양 공약'을 쏟아내며, 증권주 랠리에 불을 붙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약이 현실화한다면, 대선 이후 국내 증시와 자본시장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투자자들은 어떤 미래를 기대하고 증권주를 매수하고 있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증시 공약 일성은 '코스피 5000 시대'다.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외국인 투자 환경을 개선해 현재 평균 0.8배 수준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을 1.6배로 끌어올리겠다는 논리다. 현재 글로벌 증시 평균 PBR은 2.8배이며, 중국과 일본 증시도 PBR이 1.3배 수준에 형성돼있다.
실현 방안으로는 상법 개정안을 첫 손에 꼽았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도입하고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해 이사회 구성을 다변화하며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를 확대해 경영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대주주의 사익 추구나 이해상충 행위에 대해 이사회가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장기 박스피 해결'을 증시 공약으로 제시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상장사에 한해 주주보호 의무를 대폭 강화하며 ▲경제사범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장기투자자에 대한 세금 혜택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세제 지원 확대 정책도 내놨다.
두 후보 모두 증시 부양을 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방법론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내놓은 것 역시 동일하다. 이전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배당 등 주주환원 강화에 집중했다면, 새 정부는 여기에 더해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덧붙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현재 해외 증시에 나가 있는 국내 개인투자자 자금만 약 1100억달러(1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절반만 되돌아와도 국내 증시 거래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개인투자자들 사이에 쪼개기 상장이나 계열사간 거래, 유상증자 등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을 떠나 정책 방향성은 맞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증시는 물론, 국내 자본시장 부양을 위해선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 증시의 외국인 보유율은 30% 안팎으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이재명 후보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김문수 후보는 '대통령의 직접 해외 투자설명회(IR)'를 제시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공약에 대해 일각에서는 '숟가락 올리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전 윤석열 정부에서 중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인 까닭이다. 2023년 갑작스런 공매도 전면 금지로 인해 실현되진 못했지만, 외환거래시장 운영 확대, 공시 접근성, 청산결제시스템 보완 등 이전의 지적사항에 대한 개선은 차곡차곡 이뤄져 온 상황이다.
MSCI는 오는 6월 국내 증시의 선진국 지수 편입 여부를 결정한다. 빠르면 올해 관찰대상국(워치리스트)에 오르고, 내년 6월 최종 편입이 결정될 수 있다. 만약 올해 워치리스트에 오른다면 새 정부의 공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시 한국 증시에 약 75조원 안팎의 자금이 유입될 거란 예상을 내놓은 바 있다.
대통령의 해외 IR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는 더욱 보수적이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임원급 관계자는 "대통령이 순방을 나가 글로벌 펀드 고위 관계자를 만난 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 없는 이야기"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임기 중 반복한 해외 IR의 효과를 두고 '단순한 정치적 행위'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인데, 이와 크게 다를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 후보의 일부 정책은 이미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내놓은 '자사주 원칙적 소각' 공약을 두고 투자금융(IB) 업계에는 '당분간 자사주 매각이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은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공공연하게 형성되고 있다. 대선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진도를 빼다 발행사는 물론, 주관 증권사도 함께 '본보기'로 찍힐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에서는 말(공약)보다는 행동(인사)을 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자본시장을 관리ㆍ감독하는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가 실제 '부양 의지'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윤석열 정부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존중한다며 자본시장 육성 의지를 밝혔지만, 그 어느 정부보다 과격한 관치(官治)로 비판받았다. 은행 금리에 개입해 왜곡을 만들고, 증권사 성과급에 개입해 오히려 역차별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금융사고 관련 사실상 '100% 배상'을 압박한 건 향후 금융권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거란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화폐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은 지난 2024년 총선때도 공약으로 내걸렸지만, 1년 넘게 변한 게 없다"며 "지금은 일단 증시 부양 공약에 대한 기대감이 상장 증권사 주가에 반영되고 있지만, 선거가 끝나면 한동안 공약 실현 가능성에 따라 변동성이 매우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