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인수금융 시장 동반 냉각
대선 이후 기대감 있지만
하반기 여건도 쉽지는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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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모펀드(PEF) 출자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상반기 중순에 접어들기도 전에 일부 출자자들은 사실상 연간 계획을 마감했으며, 프로젝트 펀드 조성은 ‘개점휴업’ 수준에 가깝다. 기대를 모았던 인수금융 시장마저 뚜렷한 회복 기미 없이 침체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융지주·캐피탈 중심으로 조기 철수
금융지주 계열 출자자들을 중심으로 출자 계획 조기 종료 현상이 뚜렷하다. 통상적으로 11월까지는 블라인드 펀드 및 프로젝트 펀드 출자가 이어졌지만, 올해는 상반기부터 출자를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한 곳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한캐피탈을 비롯해 IBK캐피탈, 하나캐피탈, JB캐피탈 등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들이 예년보다 일찍 출자를 잠정 중단하거나 보수적으로 출자에 나서고 있다.
출자 큰 손인 금융계열 캐피탈사들이 소극적이다 보니 중소형 캐피탈사들에 요청이 몰린다. PEF들은 중소형 캐피탈사들이 워낙 출자 규모가 작다보니 펀드 조성이 쉽지 않다고 판단해 포트폴리오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PEF 업계 관계자는 “과거 수백억 원씩 출자하던 대형 캐피탈사들도 이제는 수십억 원 내외로 출자를 줄이거나 아예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며 “사실상 전체 펀드의 40~50%를 책임졌던 앵커 출자자가 사라진 셈”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신규 펀드레이징에 나선 중대형 PEF조차 프로젝트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는 블라인드 펀드에서만 자금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딜 구조 자체를 변경하고 있다.
출자 위축의 근본 원인…‘RWA 규제’ 강화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배경은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된 ‘바젤Ⅲ’ 규제다. 특히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산정하는 방식이 엄격해지면서,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PEF 출자에 대한 위험가중자산(RWA) 비율이 400%까지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금융사의 CET1 비율이 떨어져 자본건전성 부담이 커진다.
은행 및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RWA 부담이 큰 PEF 출자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해졌다는 판단이다. 그나마 일부 캐피탈사가 출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은행 계열에서는 사실상 PEF 출자가 자취를 감췄다.
이에 금융권은 RWA 규제 완화를 금융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TF를 구성해 관련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며, 은행연합회 역시 은행권의 요구사항을 수렴해 전달할 예정이다.
그러나 업계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금융정책의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고,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인선 및 정책 방향 설정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철 조기화’도 변수…출자 판단 더 보수적으로
여기에 금융권 내부 인사시즌이 앞당겨지고 있는 점도 출자 위축에 한몫하고 있다. 과거 연말에 진행되던 주요 인사가 3분기까지 성과를 중심으로 단행되는 사례가 늘면서, 기관 내부에서도 ‘큰 결정’을 상반기에 끝내려는 분위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하반기 인사가 빨라지면서 출자시즌이 앞당겨지고 있다”며 “책임자 입장에선 교체될 수 있는데 굳이 리스크를 안고 하반기에 출자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즉, 규제뿐 아니라 조직 운영상의 현실적 제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PEF 출자시장은 다층적 ‘빙하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인수금융도 부진…“매물은 돌지만, 딜은 없다”
PEF 시장과 동조화된 모습은 인수금융 부문에서도 감지된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M&A가 본격화되고, 이에 따라 인수금융 수요가 발생한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기준 이렇다 할 대형 딜이 눈에 띄지 않는다.
IB업계는 당초 인수금융을 올해 핵심 먹거리로 삼고 조직확대 등을 통해 전열을 정비해 왔으나, 실제 거래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리 인하 기조에 따라 리파이낸싱 수요는 일부 존재하지만, 이는 신규 딜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인수금융 실적 부담이 크다”라며 “조단위 거래 한 두건은 가져가하지만 막상 아직까진 작은 거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대선 이후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만 실제 딜이 가시화되기까지는 최소 수개월의 시차가 예상된다. 대선이 끝나더라도 정부가 구성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하반기가 시작되도 대기업, PEF가 움직이는데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거래는 대부분 PEF가 과거에 인수했던 자산의 셀다운 수준에 불과하다”며 “대기업의 리밸런싱 움직임이 하반기 이후 본격화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