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풍랑에 놓인 산은·해수부, HMM 매각도 원점으로 회귀
입력 2025.05.22 07:00
    이재명 후보, 산은 대신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
    HMM도 이전 추진키로…실익 없지만 상징성 커
    HMM 매각에도 영향…현실적으로 매각 어려워
    정부 영향력 유지할 수도…HMM 사업 확장 주목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산업은행과 해양수산부, 주요 해운사들이 격랑에 휩싸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선 선을 그었지만 해수부와 HMM을 부산에 유치하겠다고 했다.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인데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붙어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HMM 매각 여부나 방식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14일 이재명 후보는 부산을 찾아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언급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윤석열 정부의 공약인데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했으나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한다는 산업은행법 조항을 바꾸지 못하면서 진척이 없었다.

      이재명 후보는 산업은행 대신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해수부가 대한민국 해양국가화, 부산 해양수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수부만으로는 부족하다며 HMM도 부산으로 옮겨 오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HMM 외에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 본사도 부산으로 옮기는 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부처 이전은 정부 의지로 하면 되지만 민간 기업들을 옮기는 것까지 정부가 관여하는 게 적절하냐는 것이다. 전국 25개 해운·수산 관련 노동조합은 이재명 후보의 부산 공약에 지지를 선언했는데, 당사자인 HMM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HMM 본사 직원은 수백 명에 불과해 이전 효과가 크지 않고, 부산의 세수 증대 효과도 미미하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수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 해양진흥공사와 시너지 효과가 날 수도 있다"면서도 "HMM의 경우 부산에 필요한 인력은 이미 내려가 있고 화주 협의나 금융 조달 등을 감안하면 본사가 서울에 있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HMM 매각 양상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부처가 다시 구성되고, 이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 등 공공기관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 정부에선 정상화한 HMM을 매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해양 국가' 공약을 건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국적 선사에 대한 영향력을 당분간 유지하려 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HMM 매각 가능성을 살피고 있는데 일단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에야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며 "이번 정부에선 HMM을 팔고 싶어했지만 새 정부에선 굳이 팔려 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와 해양진흥공사는 원래부터 HMM 매각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특히 해양진흥공사는 사실상 HMM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새 정부 들어 HMM과 부산에 힘을 실어준다면 해양진흥공사의 입지는 더 강화할 수 있다. 굳이 HMM을 일찍 놓을 이유가 없다.

      산업은행은 자본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위험가중치가 높은 투자 주식을 빨리 처분하길 바란다. 다만 국내에서 HMM을 통째로 인수할 만한 곳은 손에 꼽는다. 이전 매각 시도 때 불거진 '자격 논란'도 염두에 둬야 한다. 최근 호반그룹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정부가 자금력만 살필 리 없다. 조선업과 시너지 효과가 있는 HD현대를 잠재 후보로 꼽는 시각도 있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미국에 해운사를 세운 것처럼 HD현대도 해운사를 원할 수 있다"며 "HMM은 범 현대가의 자산이었기 때문에 HD현대가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마지막 영구채가 주식 전환되면서 HMM의 덩치는 더 커졌다. 두 기관이 가진 HMM 주식 시가만 16조원을 넘어섰다. HMM은 올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2조5000억원 규모를 주주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산업은행 등의 지분을 차차 줄여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안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해운담당 연구원은 "HMM 덩치가 너무 커져 통매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년에 걸쳐 덩치를 줄이는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다"며 "HMM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산업은행의 부담을 덜어주고 향후 매각 때 차입매수(LBO)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그간 원활한 매각을 위해 HMM이 덩치를 키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HMM은 컨테이너선 중심의 사업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SK해운 등의 자산을 인수하려 했으나 산업은행의 동의를 얻기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당장 매각이 어려운데 차기 정부 HMM의 사업에도 더 힘이 실린다면 HMM이 M&A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