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구조 유상증자에 삼성은 되고 포스코는 걸린다?
문제 있건 없건 '낙인'부터 찍기…유사 허가제처럼 변질
투자자 보호 명분으로 선거철 여론 읽는 정무적 심사化
뒷말 무성한 만큼 금감원 신뢰 ↓…떠날 때까지 부작용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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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5일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임기가 마무리된다. 월권 논란을 자초한 이 원장의 행보는 임기 내내 잡음을 일으켜왔다. 대권 레이스가 막을 올리며 벌써 새 금감원장 하마평이 오르내리는데, 이 원장이 떠나도 한동안 금감원이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거란 말이 나돌고 있다.
올해 도입된 유상증자 중점심사제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금감원이 이미 사실상 권력기관이 된 듯하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삼성SDI와 포스코퓨처엠 증자는 어디가 어떻게 다를까.
금감원은 지난 14일 포스코퓨처엠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회사가 증자 계획을 공시한 지 하루 만이다. 유상증자 규모가 1조원 이상으로 크고 관심이 집중됐다는 이유가 중점심사 대상 선정의 배경이다. 그러나 중점심사 대상이 되는 공모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기준도 불명확하고, 이를 금감원이 정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SDI도 두달 전 2조원 규모 유상증자에 나섰다가 중점심사 1호 대상에 오르긴 했다. 그러나 이번 포스코퓨처엠이 중점심사 대상에 오른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투자은행(IB)들은 삼성SDI가 금감원과 사전 교감을 잘 해둔 덕에 별 탈 없이 조달을 마칠 거라고 일찌감치 내다보고 있었다. 미리 합을 맞춰둔 상태였다는 것이다.
대형증권사 한 임원은 "삼성SDI가 실제 증자 채비를 갖춘 건 작년 11월인데, 마침 금감원이 금양을 시작으로 차바이오텍까지 유증으로 물의 일으킨 발행사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때였다"라며 "결과적으로 삼성SDI는 중점심사제 도입 이후인 3월에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 금감원과 이미 얘기가 된 상태여서 주관사단에서 '역시 삼성은 삼성'이란 말까지 나왔다"라고 전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삼성SDI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2년여 전부터 유상증자 계획을 꾸려왔다. 그러나 삼성SDI가 증자에 나선 3월 말까지도 모회사 포스코홀딩스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이달 들어 급하게 유상증자 계획을 내놨다. 급박한 상태다 보니 회사 내부에서도 실기(失期) 했다는 분위기가 그대로 새어 나온다.
재무 사정이 시급하기로는 포스코퓨처엠이 삼성SDI의 곱절이다. 이번에도 금감원이 길을 터줄까. 하필이면 대통령 선거가 막을 올린 참이다. 공교롭게도 포스코그룹 차원에서 차기 정부를 겨냥한 대관 전열을 갖추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는 전언이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자 규모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양사 모두 더 이상 차입을 늘려선 안 되는 상황에 설비투자(CAPEX)를 마치기 위해 유상증자로 자본을 확충하는 거라 거의 똑같은 구조"라며 "양사 모두 모회사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덕에 증자할 수 있어서 다행이어야 하는 건데, 선거철 여론 민감도나 그룹 대관 능력이 변수가 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금감원이 정말 투자자들을 보호하려고 중점심사제를 만들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민간기업 조달 문제에 'A 회장은 유력 후보와 공식 회동을 가졌는데 B 회장은 전임 대통령 때 선임되지 않았느냐'라는 말이 나오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중점심사제가 아니라 '증자 허가제'라 불러야 한다는 푸념까지 들린다.
중점심사제 도입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인사는 "금감원이 오라 해서 참석은 했지만 다들 뒤로는 '어떻게 상장사 경영 판단에 간섭할 생각을 하느냐'라고 했다"라며 "결국 금감원 스스로도 기존 공시 충실성 검토 외엔 덧댈 게 없어서 맹탕으로 내놓은 게 지금 중점심사제"라고 전했다.
중점심사제 이전에도 금감원은 유상증자를 비롯한 상장사 공시 전반을 들여다보고 제재할 권한을 갖추고 있었다. 바뀐 게 있다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단계에서부터 '중점심사 대상'이라 낙인찍고, 소액주주 민심을 살필 수 있게 된 정도가 꼽힌다.
여기에 선택적으로 활용된다는 듯한 인상까지 더해지면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인지 ▲선거철 표밭인 소액주주에 대한 감독당국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단이 될 것인지 ▲특정 상장사의 대정부 관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인지 등 불신이 잔뜩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중점심사제를 이대로 두면 금감원 권한이 상장사 전반에 대한 정무적 통제로 뻗어나갈 형국이다.
법률상 금감원 업무는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및 감독으로 규정돼있다. 금융위가 설계한 시스템 안에서 실무를 집행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고, 비금융 기업 공시 심사에는 원칙적으로 깊숙이 개입할 수 없다. 이 원장 임기 내도록 금융위와 금감원 관계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 많았는데, 그보다 더한 부작용이 이후로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2년 전 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당장 이복현 원장의 '금융위원장 패싱' 논란보다도, 계속해서 이런 성격의 인사가 금감원장을 맡을까 걱정이 더 많다"며 "정부가 금감원을 한번 권력기관처럼 활용하고 나면 그게 관성처럼 굳어질 개연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중점심사제가 '후임 원장에게 이복현 원장이 주는 선물'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