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의 주주보호 방안 요구 충족하기 어려웠단 평
SK이노 수장 교체에 IPO 재개 가능성 낮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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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엔무브의 기업공개(IPO)가 사실상 무산됐다. 한국거래소의 중복상장 관련 제동 이후 상장 업무는 모두 멈춘 상황이다. 상장 주관 담당 인력들도 전부 철수한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선 SK이노베이션 CEO 교체와 더불어 주주보호 방안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상장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SK엔무브는 올해 기업공개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빠르면 7월께 상장한다는 목표였다. 지난해 11월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기업공개 대표주관사로 선정했고, 패스트트랙 요건을 충족하면서 빠르게 상장을 추진할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2013년, 2015년, 2018년 등 세 차례 번번이 실패했으나, 세 번째 시도 이후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번엔 상장을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받기도 했다.
제동이 걸린 건 지난 5월이다. 거래소가 상장예비심사 전 사전협의 과정에서 SK엔무브가 '중복상장'에 해당하니, 기존 주주를 보호할 방안을 내놓으라는 입장을 전달하면서다. LG CNS의 상장으로 중복상장이 업계 화두가 된 시점이었다.
SK엔무브의 지분 70%는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하고 있다. SK엔무브는 2009년 SK에너지의 윤활유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된 회사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번 건이 '쪼개기 상장'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거래소가 앞선 유사 사례를 감안해 투자자 보호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SK엔무브와 주관사단 입장에서는 사실상 거래소와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주주 보호 방안을 준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된다. 현물 배당과 같은 주주환원책을 제시하는 등 주주보호 방안 마련을 위해선 추가적으로 자금을 더 동원해야 하지만 FI와 소통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점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에서는 SK엔무브가 주주보호방안을 가져오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에서 상장심사 기조가 엄격해진 데 따라 기존 주주 보호방안을 꽤나 까다롭게 요구했고, SK엔무브 측에서 요구 사항을 모두 반영하기엔 부담스러워했다"라고 말했다.
SK엔무브의 상장 최대 목적이 재무적투자자(FI)의 구주매출인 점이 주주보호 방안 마련에 걸림돌이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무적투자자(FI)인 IMM크레딧솔루션(ICS)의 투자금 회수를 중심으로 한 공모 구조를 검토 중이었기 때문이다.
ICS의 지분이 30%에 달하는 만큼, ICS의 지분만 매각해도 구주매출만 공모비율의 30%가 되는 상황이었다. SK엔무브 주관사단은 최대한 FI 구주매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공모 구조를 짜는 중이었다. SK엔무브의 실적이 잠시 반등하긴 했지만,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면 윤활유 시장이 성장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더해 구주매출을 최대화하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시장의 우려사항이었다.
이번에 SK이노베이션 CEO가 교체된 점 역시 SK엔무브의 상장을 재개하긴 어려워졌다는 데 힘을 더했다. 분위기도 감지된다.
SK이노베이션은 28일 이사회를 열어 장용호 SK㈜ 대표이사를 CEO인 총괄사장, 추형욱 SK이노베이션 E&S 사장을 대표이사에 선임하는 안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2023년 말 인사에서 총괄사장에 오른 박상규 대표가 이례적으로 취임 후 불과 1년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물러나게 된 것이다. 박상규 대표는 SK엔무브 상장이 무산된 데 따른 책임을 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관사단이 SK엔무브가 위치한 서린빌딩에서도 모두 철수해 사실상 무산이라고 봐야 한다"라며 "FI 엑시트를 위해선 IPO 대신 상환이나 교체 등 다른 방안을 알아볼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