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삼성생명법 다시금 관심
일각에선 삼성, 외풍 활용해 승계 수순 가능성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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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출발할 새 정부 출범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는 이슈 중 하나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을 계기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처리 문제와 맞물려, ‘삼성생명법’이 지배구조 개편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은 지난달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인적분할 방식으로 나누어, CDMO(위탁 개발·생산) 사업을 전담하는 존속법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담당할 신설 지주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홀딩스’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신설 지주회사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직접 보유하게 되며, 기존 바이오로직스는 제조 중심 사업에 집중하게 된다.
삼성은 이번 인적분할이 사업 전문성 강화와 글로벌 CDMO 시장 확대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CDMO 기업은 원칙적으로 신약개발과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필수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와 재계에선 이번 구조 개편이 단순한 사업적 목적을 넘어 지배구조 재편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삼성물산(43.1%)과 삼성전자(31.2%)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요 주주다. 인적분할 이후 이 두 회사는 신설된 삼성바이오에피스홀딩스의 지분도 보유하게 된다. 이 지분은 향후 삼성전자에 대한 간접 지배력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 이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보유한 지분을 삼성바이오에피스홀딩스에 현물출자할 경우, 삼성물산이 보유 지분을 매각해 약 29조6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 삼성생명(8.5%)과 삼성화재(1.5%)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약 32조9000억원)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이 실탄을 마련해 삼성전자 지배력 확대에 나설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다.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삼성의 전략에 다시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시장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은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문제로 인해 여전히 사회적 신뢰 회복 과제를 안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기업가치 부풀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점도 부담 요소다. 이재명 대통령의 자본시장 관련 공약 중 '기업 합병시 주가 뿐만 아니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고려한 공정가액 적용' 규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같은 사례를 '타깃'으로 삼고 있단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와 여론의 반발 없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 위한 합리적 명분 확보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 계류 중인 ‘삼성생명법’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생명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평가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고,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8.6% 수준으로, 취득원가는 약 5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시가로는 약 28조원에 달한다. 만약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보유 지분의 상당 부분(약 18조원 규모)을 처분해야 한다.
현재 해당 법안은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며, 여야 정계의 정책 방향에 따라 재점화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법안이지만, 새 정부와 국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외부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법의 통과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제 처분이라는 법적 근거가 생기면,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 등 다른 계열사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반발이나 주주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적 ‘명분’을 바탕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가 급상승한 지금이 삼성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적기”라며 “이제는 내부 역량뿐 아니라 법·정치적 외부 환경 변화도 적극 활용하는 국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