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사업보다 FI 정리에 혈안…이젠 진짜 '알짜'들도 흔들
입력 2025.06.09 07:00
    3년전부터 시작된 IPO 트러블…그룹 전체로 확산中
    SK스퀘어보다 규모 커진 FI 투자원금·회수보장 계약
    '프리IPO+경영실패=고금리 대출'…급한불 꺼야해도
    '잘 파는' 투자전문가 전면에…이후엔 어떡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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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의 올해 리밸런싱(사업 조정) 초점이 재무적 투자자(FI) 교통정리로 집중되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받아낸 조 단위 투자금에 웃돈을 얹어 돌려주거나, 조건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동시다발로 이뤄지는 중이다. 청구서 부담이 만만치 않은 터라 각 계열사가 보유한 알짜 사업장은 줄줄이 유동화 대상에 오르고 있다. 

      SK그룹의 'IPO 트러블'이 본격화한 건 3년 전부터다. 2022년 4월 SK스퀘어의 자회사 SK쉴더스와 원스토어는 일주일 간격으로 기관 수요예측에 나섰다가 순차로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국내 기관 수요예측에 앞서 해외 투자자 참여율을 따졌더니 물량을 채우기 어려운 분위기가 짙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모가 하단에 맞춰 국내 자금이라도 모아볼까 했지만 일부 FI들이 계약 위반이라고 반대하며 이 역시 무산됐다. 

      11번가와 콘텐츠웨이브 등 후발 주자들의 성적표도 마찬가지다. 결국 SK쉴더스는 매각됐고 11번가는 SK스퀘어 이사회가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거부하며 FI 주도로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콘텐츠웨이브는 경쟁사 티빙으로의 합병을 앞두고 있다. SK스퀘어는 한때 홈페이지에 순자산가치(NAV) 대비 할인율을 걸어두고 연쇄 중복상장을 통한 '제값 찾기' 여정을 예고했지만 어느새 내려갔다. 지금은 SK하이닉스 모회사로서 주가가 치솟고 있지만 FI 정리 작업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금 진행 중인 SK이노베이션과 SK에코플랜트의 자산유동화는 이런 FI 정리 작업이 그룹 전체로 확산하게 된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FI와 주고받은 투자원금이나 회수보장 요건의 규모가 훨씬 크다 보니 그룹의 기둥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지금 SK그룹 상황은 SK스퀘어의 대규모 버전에 가깝다. 2022년 이후로 기준금리가 치솟으면서 FI가 요구하는 하방 조건도 7.5%에서 크게는 두 자릿수까지 뛰었기 때문"이라며 "하필이면 작년 리밸런싱 때 합병 작업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FI들의 권리가 더 강화됐다"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이 내년까지 부담해야 할 청구서만 크게 두 건이다. 윤활기유 자회사 SK엔무브는 IMM크레딧에서 1조1000억원을 유치했고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한국투자PE와 MBK파트너스 등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 컨소시엄으로부터 2조8000억원을 유치했다. 각각 ▲특정 의무조항을 고의적, 악의적으로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특정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 일부 투자자가 대주주에 서면 통지를 전달하면 FI들이 매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각기 원금에 연 복리 10%, 7.5% 수익률(IRR)을 적용해 FI 지분을 되사와야 한다는 얘기다. 사내독립기업(CIC)인 SK E&S가 보유한 LNG 밸류체인 내 잔여자산을 유동화하면 필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거란 평이다. 

      최근 SK에코플랜트가 폐기물 자회사 리뉴어스·리뉴원 매각과 함께 SK에어플러스 산업용 가스 유동화, SK테스 전환우선주(CPS) 재발행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국내 4개 PE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 프리IPO를 진행했는데, 내년 7월까지 상장을 마치는 조건이었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FI를 내보내거나, 교체하거나, 달래기 위해서 작년에는 SK스페셜티를 팔았고, 이제는 도시가스 자회사에 LNG 발전소, 산업용 가스 등 현금흐름이 좋은 알짜 사업장들을 줄줄이 담보로 내놓고 있다"라며 "KKR이나 브룩필드, 칼라일 등 글로벌PE들도 작년 하반기 이후 성과가 시급하던 터라 거래가 빨리 진행되는 건 다행이지만 이다음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라고 전했다. 

      상장을 통한 회수보장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면 하루빨리 상환하는 게 지출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이긴 하다. 유동성 호황기에 체결된 프리 IPO 자체가 잘못된 몸값을 기반으로 수년 뒤 시장 멀티플(배수)을 예측하는 계약이었던 만큼 지금이라도 리스크를 줄이는 게 낫다는 얘기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주주간 이해상충을 해소하겠다고 나선 터라 모자회사 중복상장 난이도가 대폭 올라갈 공산도 커졌다. 

      그러나 SK그룹이 계속해서 사업 자체보다는 FI와 협상하기 위한 자본시장 활용법만 골몰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시각이 꾸준히 늘고 있다. 

      계열 사업장에서도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갖춘 인사보다 투자업에 잔뼈가 굵은, 소위 '딜 전문가'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새 나온다. 최근 SK㈜에서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으로 내려온 장용호 사장도 과거 SK PM2실(현 첨단소재투자센터)을 거친 투자 전문가로 통한다. 미국 관세를 시작으로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는 때에 적합한 인사가 맞는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부회장들이 물러가고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체제 들어서 '잘 산다'는 사람 대신 '잘 판다'는 사람들이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 같다"라며 "프리 IPO에 경영실패가 더해지면서 고금리 대출만 잔뜩 남았는데, 지금 또 다른 투자 전문가들이 땜질 작업에 투입되는 모양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