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파이낸싱 등 대출은 3~4%대 금리 나와도
자산군별 BM 다 달라 비중 무작정 못 늘려
NPS '기준포트폴리오' 확대 도입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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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국내 채권금리가 2%대 초반까지 하락하면서, 장기 기관투자가인 연기금·공제회들이 자산배분 전략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연 5% 내외의 지급률을 제공해야 하는 구조상, 현 수준의 채권 수익률만으로는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유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기관의 전체 수익률을 고려하면 국내 채권 투자 비중을 줄여야 하는 것이 맞지만, 각 투자 부문별로 벤치마크(BM)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녹록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기관의 운용 자율성이 높이기 위해 국민연금이 도입한 '기준포트폴리오'를 다른 연기금·공제회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국고채 3년물의 금리는 2.347%를 기록했다. 같은 날 AA- 등급의 회사채 3년물 금리는 2.917%를 기록했다.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가 모두 2%대에서 형성돼 있다. 이는 불과 작년 금리가 3% 후반에서 4%대 초중반에 머물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아진 수준이다. 금리 하락은 채권 평가이익에는 우호적이지만, 신규 자산운용 관점에서는 투자 매력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일부 민간 금융사들은 여전히 연 3~4%대 금리를 제공하는 기업금융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특히 대출 성격의 리파이낸싱 등 기업금융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 증권사들도 대출 기반 구조화 상품에 대한 셀다운을 강화하고 있다.
한 민간 금융사 투자 담당자는 "현재 채권 금리가 2%대에 머물고 있어, 채권 금리보다만 높으면 모든 투자건들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국내 대출 금리가 내렸다고 해도 3~4%대 정도는 나와주고 있어, 리파이낸싱 건들도 적극적으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기금과 공제회는 단순히 수익률이 높은 투자부문에 자산을 몰아줄 수 없는 구조다. CIO(최고투자책임자) 입장에서는 각 자산군별로 설정된 벤치마크(BM)에 따라 수익률과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자산군 간 급격한 전환은 제도적 제한이 따른다.
국내 연기금·공제회들은 국내채권, 국내주식, 해외채권, 해외주식, 대체투자 등 각 자산군마다 별도의 운용 지침과 수익률 기준(BM)을 두고 있다. 자산군 별 투자비중도 정해져있어 무작정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도 없다. 실제로 한 기관은 현재 국내 부동산 투자 비중이 한도에 달해 신규 투자 버퍼가 수백 억원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는 "채권 수익률을 고려하면, 3~4%대 금리가 나오는 사모 대출 투자는 늘리는 것이 맞지만 해당 부서의 BM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라며 "대출 쪽도 금리가 과거 대비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해당 부서의 BM이 4~5%라면 무작정 투자를 늘릴 수도 없는 고충이 있는데, 이는 비단 특정 기관만의 문제가 아닌 업계 전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기준포트폴리오'를 도입한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기준포트폴리오는 지난해 5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후 올해부터 본격 도입된 제도다. 포트폴리오를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으로 나누고 중장기적으로 두 자산간의 일정 비율(위험자산 65%, 안전자산 35%)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비율을 준수하는 선에서 다양한 투자군에 투자를 집행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대체투자에서부터 이같은 기준포트폴리오를 적용해 시행하고 있는데, 점차 전체 자산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준 포트폴리오를 활용하면 현재 국내 및 해외 주식·채권, 대체투자 등 5개 자산군에 속하지 않은 투자 상품에 투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정세 등을 고려해 특정 자산군의 투자 비중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이 같은 국민연금의 기준포트폴리오 체계는 자산군 간 유연한 비중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최근 낮아진 채권금리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거론된다. 타 연기금·공제회까지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에는 한국투자공사(KIC)도 기준포트폴리오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연구 용역을 발주한 했다. 결과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준포트폴리오의 확대 적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높은 수익률에 대한 충분한 인센티브 제공 없이 기관의 자산운용 자율성만 늘릴 경우, 자금이 안전자산 중심으로만 몰려 자칫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준포트폴리오를 전체 연기금·공제회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투자업계에서 일부 나오고는 있지만, 국민연금도 이제 막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만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장기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수익률에 대한 하향평준화 우려와 손실이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