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신탁도 책준 소송 '패소'…대주단 합의 종용에 곤혹스러운 신탁사들
입력 2025.06.12 07:00
    법원 "직원 과실로 책임준공 미이행 시 신탁사에 책임"
    전액 손해배상 판결…두 번째 책임준공 패소 사례
    "어차피 질 소송" 합의 압박하는 대주단…복잡해진 신탁사 셈법
    "전액 배상은 과도"…신탁업계, 항소 통해 판례 뒤집기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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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무궁화신탁이 책임준공 확약 미이행과 관련된 소송에서 새마을금고 대주단에 패소했다. 앞서 신한자산신탁이 유사한 사안으로 패소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 이번에는 신탁사 직원의 횡령이 원인이었고, 쟁점도 일부 달랐지만 법원이 또다시 신탁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업계에 또 하나의 부담이 더해졌다.

      5일 서울중앙지법(민사37부)은 무궁화신탁에 21개 새마을금고 대주단으로부터 받은 PF대출 원리금 전액과 지연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손해 배상 금액은 약 212억원이다. 

      사안의 핵심은 신탁사 직원의 횡령이 책임준공 불이행의 직접적 원인이었는지, 그리고 대주단에도 일정 책임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해당 사업장에서는 신탁사 직원이 시행사 관계자와 공모해 PF대출금 약 42억원을 편취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직원이 한창건설 명의의 자금집행요청서를 위조해 대주단에게 제출하며 자금을 부당하게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궁화신탁은 횡령으로 인해 필수 사업자금이 부족해졌고 이로 인해 공사가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주단 측이 허위 자금집행요청서에 동의한 점도 문제 삼으며 "조건의 성취가 신의성실에 반한 경우로서 무효"라는 주장을 펼쳤다. 대주단이 자금집행 요청서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동의함으로써, 대출금 집행의 적정성을 검토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신탁사의 항변을 일축했다. 대주단이 대출금 집행의 적정성을 검토할 의무가 없다고 봤다. 허위 자금 집행 요청에 대한 대주단의 동의는 신탁사가 책임을 면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이를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회피하려는 신탁사의 태도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판결은 책임준공 확약서에 명시된 조항을 중시했다. 확약서에는 "공사비 부족이나 시행사의 귀책 등 어떤 사유로도 임의로 공사를 지연할 수 없으며, 책임준공의무를 확약기한 내에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이행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대출원리금과 연체이자)를 대주단에 배상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재판부는 해당 내용이 피고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조항이라고 보고 손해배상 의무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원리금 전액 배상 여부보다는, 신탁사의 내부 관리 책임 범위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지난 5월 신한자산신탁 사건과는 구별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핵심은 결국 법원이 신탁사 측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데 있어, 업계 전반에는 경고성 시그널로 여겨지고 있다. 

      책임준공 관련 소송에서 신탁사들이 연이어 패소하며 업계 전반에 불리한 기류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패소 사례가 누적되며 대주단들이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책임준공 사업장에 있어 신탁사와 대주단 간에는 일정 수준의 협의가 오가기도 했으나 최근 들어 대주단 측이 "소송까지 가지 말고 배상 조건을 수용해 합의로 끝내자"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신탁사들은 각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 소송을 이어갈지, 자산을 정리해 대주단에 조기 상환할지를 저울질하며 손실 최소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신한자산신탁에 대해 대출 원리금과 지연 이자를 전액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나오자, 그동안 관망하던 대주단들까지 잇따라 손해배상을 요구하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신탁사들은 항소심에서 책임 범위와 배상 비율 등에 대해 적극 소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대주단과의 협상 여부는 사업장별로 달리 판단하고 있다”며 “미분양 자산을 할인 매각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면 조속히 대주단에 상환하는 편이 낫다. 다만 매각이 안돼 공매로 넘어가면 자산가치가 급락해 충당금 부담이 커지는 만큼 이 경우엔 차라리 소송을 택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0일과 5일 각각 내려진 신한자산신탁과 무궁화신탁 1심 판결에서는 시공사·시행사의 상환 여력 부족을 근거로 신탁사에 PF 대출 원리금 전액을 배상하라는 판단이 나왔다. 업계에서는 시공사 측 자금 여력이 남아있는 사업장의 경우 향후 소송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신탁사의 경영 상황 등도 고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신탁사들이 수임한 책임준공형 PF 사업장은 총 239곳이며 이 중 34곳에서 준공 미이행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유사 소송은 15건 이상이 진행 중이며, 전체 소송가액은 수천억 원대에 달한다.

      이번 패소 관련, 무궁화신탁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