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너티의 롯데렌탈 인수, 구주와 신주 가격 3배 차이…소액주주는 또다시 봉?
입력 2025.06.13 07:00
    롯데렌탈 유상증자 구조에 기관 소액주주 반발
    계속되는 '대주주만 유리한' 거래 관행 비판
    美에서는 '소송권'으로 소액주주 권리 보호
    국내 상법 개정 추진 움직임 속 논란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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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너티)가 롯데렌탈 인수를 진행 중인 가운데 제3자 유상증자와 관련해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어피너티가 롯데그룹의 경영권 지분은 시가보다 비싸게 매입하고, 롯데렌탈의 신주는 시가 수준에서 인수하는 거래 구조를 두고 비판이 나온 것이다.

      펀드 소진 압박이 있던 어피니티가 롯데 측으로부터 '시장가격'인 신주 발행 가격보다 약 3배 높은 가격으로 구주를 인수하면서 나온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현재 이재명 정부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요구하는 상법 개정에 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 여파가 주목된다.

      11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렌탈 지분 약 4%를 보유한 VIP자산운용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VIP 측은 이번 증자가 어피너티 측에만 유리하게 설계돼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롯데렌탈은 2월, 대주주 호텔롯데가 보유한 지분 56.17%를 어피너티에 주당 70115원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이사회는 어피니티를 대상으로 주당 29180원에 신주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도 전격 결의했다. 양측은 3월 해당 지분을 15729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아직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은 나오지 않았다.

      VIP자산운용은 “유상증자를 통해 어피니티는 지분율을 기존 계약분의 63.5%까지 확대하고, 그 전체 평균 매입단가를 약 16% 낮추는 효과를 얻게 됐다”면서 “대주주는 높은 가격으로 지분을 매각하고, 동시에 대주주의 이사회는 매수자에게 추가 지분을 ‘할인’해 배정하여 단가를 낮춰주는 이례적 구조를 만들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롯데렌탈 측은 긴급한 자본 확충이 필요했다고 밝혔지만, VIP자산운용은 “롯데렌탈은 4500억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과 연 3000억원 수준의 영업현금흐름을 보유한 안정적인 재무구조”라며 반박했다. VIP는 롯데 측에 수차례 문제 해결을 촉구했으나, 유상증자 강행 기조가 이어지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M&A(인수합병) 과정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대주주에 유리하게 활용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KB금융은 2014년 6월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의 지분 19.47%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이후 자사주 매입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39.8%까지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된다는 거센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KB금융은 2015년 6월 LIG손해보험 지분 19.47%(1168만여 주)를 6450억원(주당 55210원)에 취득했고, 자사주를 2015년 11월 13.82%(829만여 주)를 2308억원(주당 27850원)에 인수했다. 이후 2016년 12월 KB금융 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신주 650만 주를 발행했는데, 1706억원(주당 26250원) 규모였다. KB금융지주는 해당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33.3%에서 39.8%로 끌어올렸다.

      소액주주들은 “RBC(지급여력비율)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대주주의 지분 확대를 위한 저가 증자”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KB금융은 추가 유상증자를 진행하지 않고 잔여 지분에 대해 공개매수를 추진했고, 응하지 않은 주주에 대해서는 KB금융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KB손해보험을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당시 소액주주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사회적 분위기가 있던 터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더 오래 전인 2011년 하이닉스 인수도 대표적인 신주(증자)와 구주 병행 구조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SKT가 하이닉스가 발행한 1조원 규모 신주를 인수(주당 2850원)해 지분 15%를 확보했고, 이후 채권단(산업은행 등)의 지분 일부를 추가로 인수해 총 지분율 21.05%를 확보했다.

      당시 유상증자의 발행가가 당시 주가보다 큰 폭으로 할인된 수준이라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있었다. 당초 주당 약 3000원 후반~4000원대가 언급됐지만, 주가 하락과 정부와 채권단의 조정 등 감안해 실제 증자 가격이 낮아졌다. 일반공모가 아닌 제3자 배정 방식으로 SKT가 참여하면서 “대기업 경영권 특혜 증자”라는 논란도 나왔다.

      다만 KB금융의 KB손해보험은 구주 인수와 신주 인수가 시간차가 있었고, 가격 차이가 ‘크게’ 나타나진 않았다는 점이 고려된다. SK하이닉스 사례도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 성격이 있었다는 명분과 이후 주가가 장기적으로 상승하며 소액주주 피해가 일부 만회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롯데렌탈은 구주 인수와 신주 인수 계획이 '동시에' 발표된 점이 주목되며, 구주 인수가와 시장가의 괴리가 큰 점이 핵심이라는 평이다. 사실상 소액주주 등 시장의 분위기를 살피는 '액션'도 없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어피너티의 롯데렌탈 인수는 실사 전부터도 ‘고밸류’ 논란이 이어진 바 있다. EV/EBITDA, PBR, PER 등 여러 기업가치 평가 지표들을 기준으로 봤을 때 국내 동종 업체들뿐 아니라 글로벌 업체와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가격을 책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어피너티가 높은 가격을 감수한 데에는 펀드 소진을 위한 압박이 배경이 됐을 것이란 시선이 나온 바다.

      한 시장 관계자는 "구주는 어피너티 측이 롯데 측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매우 높게 쳐준 것이고, 소액주주들은 그런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장 관계자는 "신주 발행 자체는 상장사는 정해진 공식이 있으니, 결국 구주 가격을 어떻게 정하냐인데 둘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항상 있다"며 "다른 주주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 맞지만, 거래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대주주가 구주에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신주로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거래가 없지 않다. 그러나 사전 통제 장치 없이 일방적인 구조가 설계될 경우, 집단 소송(Class Action) 및 법원의 공정의무(Fiduciary Duty) 판단이 이어진다. 미국의 사적 배정(Private Placement)은 한국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 구조지만, 규제와 주주 소송 리스크 등 제도적 감시 강도가 더 높은 편이다.

      구주 취득 가격과 신주 발행 가격 괴리가 논란된 사례로 브룩필드자산운용(Brookfield Asset Management)의 테라폼파워(TerraForm Power) 인수가 있다. 2018년 6월, 테라폼파워의 기존 지배주주였던 브룩필드는 인수 후 51%에서 65.3%로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약 6억5000만 달러 규모의 사적 배정을 단행했고, 주당 10.66달러에 신주를 직접 인수했다. 

      이에 구주를 보유한 지배주주는 프리미엄을 누리며, 기존 소액주주는 지분 및 의결권이 희석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소액주주들은 델라웨어 형평법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소송은 브룩필드의 승리로 끝나긴 했지만 2020년 첫 소송부터 2021년 델라웨어 고등법원 판결, 2023년 항소를 거쳐 2024년 브룩필드가 나머지 주식 공개매수로 상장 폐지를 완료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요구하는 상법 개정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도 고려된다. 유상증자가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는 개정 상법의 첫 적용 사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11일 한국거래소에서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주재했다. 취임 이후 첫 번째 경제 관련 외부 일정으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너무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며 "시장 불공정성과 불투명성을 해소하고 최소한으로 완화하는 게 제일 중요한 과제"라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어피너티가 락앤락 사례처럼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폐지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는데, 과거에는 일반주주가 배제된 공개매수가 진행됐지만 이제는 어려울 수 있다. 현재 대통령실 비서실장인 강훈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인수할 때 지분 100%를 의무 공개매수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현행 법상으로는 롯데렌탈 같은 유상증자 사례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상법 개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주주 충실 의무를 위반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처벌을 받는지도 명시해야 한다”며 “롯데렌탈 사례를 선례로 삼아 이후 실질적으로 유효한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