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 일환으로 탄생
"제트스코어 치환…작은 점수차 크게 벌려 부담"
"평가 취지 공감…1위라고 해서 우월하다고 보기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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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협회의 '신용평가회사 역량평가'가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3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의 역량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역량평가의 존재감이 과거에 비해 낮아지면서다. 역량평가의 주체인 금투협도 올해부터 '종합 1위'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등 순위 발표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금투협은 매년 5월 중 '신용평가회사 역량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신평사 역량평가는 신용등급의 정확성, 신용등급의 안정성과 예측지표의 유용성 부문을 대상으로 하는 정량평가(50%), 정성평가(50%)로 각각 이뤄진다.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의 평가결과 심의를 거쳐 부문별 우수 신용평가회사 발표하는 방식이다.
이는 지난 2016년 금융위원회의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신평사에 대한 시장 규율 강화를 위해 2017년부터 연 1회 시행되는 제도다. 평가대상은 회사채 신용평가업 인가를 취득한 한기평, 한신평, NICE(나이스)신평 3곳이다. 평가방법은 학계, 연구원, 금융투자업계 등 전문가 태스크포스(TF) 논의를 통해 마련됐다. 또 신평사에서 개진한 개선 의견을 평가위원회(학계 1인, 연구원 1인, 업계 5인 등 총 8인)의 심의를 거쳐 마련한 평가방안에 따라 평가가 이뤄진다.
그런데 현재 그 목적이 애매해졌다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당시 발행사와 신평사간 서면계약 없이 예상 신용등급을 기업에 제공하고, 신평사 간 등급 담합을 하는 등 불건전 영업 행위를 개선하기 위해 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또 발행사가 원하면 금융감독원에 신평사를 선정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인 선정 신청제가 도입됐는데, 금투협의 신평사 역량 평가 결과가 선정 신청제의 '선정' 근거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평가사 역량 평가를 통한 자동 선정 방식은 전 세계 신용평가업계에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은 방식"이라며 "신평사들의 상향평준화로 시장의 만족도가 높아져 결국 (금투협 신평사 역량평가의) 목적이 애매해졌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점수도 과거 대비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정량평가 부문인 정확성, 안정성, 유용성 지표의 점수차도 신용평가3사간 크지 않다. 금투협은 정량평가 지표와 설문 응답값으로 이뤄진 정성평가 점수에 대한 표준점수(제트스코어·z-score)를 산출해 가중평균값을 낸다.
또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제트스코어로 치환해서 수치를 산출하면 비슷비슷한 점수라도 억지로 크게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며 "실제론 3사간 점수가 비슷한데 작은 점수차를 크게 벌리는 것도 신평사 입장에서는 부담"이라고 짚었다.
정성평가는 채권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메일을 통해 전달된 설문지에 직접 기표하는 방식으로 대리 보팅이 가능하며, 이미지 투표가 될 가능성도 크다.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과거에 비해 줄었다는 평가다.
한 설문 참여자는 "신평사에 대한 시장의 평가이긴 하지만 과거에 비해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며 "신평사 입장에서 1등하면 나쁠 건 없고, 꼴찌를 해도 크게 데미지는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과거에 있었던 등급장사 같은 관행도 현재는 불가능해 정성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금투협에서도 별다른 동기부여 없이 매년 관행적으로 하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평가위원회 내부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의 요청에 따라 평가 항목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과거에는 정확성, 안정성, 유용성만 평가를 했으나, 안정성과 유용성 항목을 하나로 묶었다. 이와 별도로 선제적 의견제시, 제공정보의 적절성, 시장소통 노력과 그 유용성 등의 항목을 추가했다.
평가위원회 관계자는 "신평사에 시장이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 평가 취지는 공감이 간다"면서도 "다만 오랫동안 해왔던 기준에 맞춰서 평가를 해오고 있고, 특정 항목에서 1위를 했다고 해서 해당 신평사가 다른 신평사에 비해 우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금투협 입장에서도 순위 발표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올해부터 '종합 1위'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그 대신 부문별로 '가장 우수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 등의 간접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신평사 관계자는 "현재의 역량평가는 무리하게 꼴찌가 생기는 시스템"이라며 "신평사들 입장에서도 언제든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절대평가 기준으로 '기준점에 미치냐 못 미치냐' 정도만 평가하는 게 옳다고 건의하는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