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 경영권 분쟁 일으킨다면 2027년 이후 노릴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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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속도감 있게 상법개정안을 재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한진칼 2대주주인 호반그룹과의 경영권 분쟁 불씨가 있는 한진그룹의 부담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경영권 분쟁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호반그룹은 2~3년 후를 기약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등 기존 내용에 더해 지난 개정안에는 추가되지 않았던 '3%룰' 등을 추가한 상법개정안을 내놓았다. 소액주주 보호는 강화된 반면, 최대주주의 부담은 커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번 개정안에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내용이 담겼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보유한 주식 1주당 선임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의무가 아니라 정관으로 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진칼은 집중투표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되면 호반그룹이 이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보다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집중투표제가 시행되면 호반 측은 몰아주기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면서 "주주총회에서도 특별결의 사항 등에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용이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분리선출 감사위원 3%룰 등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당 안은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의 수를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리고,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한진칼의 정관에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회 위원의 선임에는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3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명기돼 있다.
다른 대주주도 3% 이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지분율을 모두 합쳐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한진칼의 경우 조원태 회장과 조현민 한진 사장,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이 각각 최대 3%씩 모아 힘을 합치는 방법이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표대결에서 호반그룹의 승산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법개정안 도입에 대해 재계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한진칼이 계속해서 분쟁 가능성에 휘말리는 배경으로는 최대주주 조원태 회장의 적은 지분율이 지목된다. 한 거버넌스 전문가는 "상법개정안이 시행되면 가장 문제가 일어나기 쉬운 기업은 지배구조가 취약한 오너체제 기업"이라며 "한진칼은 조원태 회장의 지분율이 낮고 우호지분에 힘입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어 분쟁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호반그룹은 호반건설과 호반, 호반호텔앤리조트 등 계열사가 보유한 한진칼의 지분이 17.44%에서 18.46%로 확대됐다고 공시했다. 호반그룹은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조 회장과의 지분율 차이는 불과 1.5%p로 좁혀졌다. 이에 한진칼은 자사주 44만44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며 지분율을 19.96%에서 20.66%로 끌어올렸다.
업계에서는 호반그룹이 당장 한진칼과의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확률은 낮을 것으로 전망한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약 20%로 차이가 크지 않지만, 델타항공이 보유한 14.9%, 한국산업은행의 10.58% 등의 지분은 조 회장 측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상법개정안이 바로 시행되더라도 우호지분을 감안하면 차이가 작지 않아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호반그룹은 2~3년 후를 내다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완료되면 지분을 팔 가능성이 높은 데다,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산업은행의 방향성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과도기인 지금보다는 안정화된 이후가 더 매력적이고, 현재 기업결합심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대명소노 등을 보며 스터디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호반그룹이 정말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다면 2027년 전후가 가능성 있다고 본다"면서 "합병이 완료되면 산업은행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고, 지금보다는 합병 후 사업이 안정화됐을 때 가져오는 게 더 이득이다. 항공 산업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만큼 지금은 명분도, 실리도 없기 때문에 대명소노와 티웨이항공 등의 케이스를 보며 상황을 살피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신자산운용과 유진자산운용이 운용 중인 사모펀드의 한진칼 지분 약 9%가 8월말 만기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당 지분의 향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진칼과 호반건설은 모두 "관련 내용에 대한 회사 차원의 입장은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