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기금, 장기물 매수 ‘속도 조절’ 돌입
국고채 상승 여파…회사채 발행 부담 증가
개인투자자도 매수세 주춤…당분간은 '관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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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재명 정부의 대규모 재정정책 예고에 채권시장이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10년 이상 국고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며, '추경에 따른 국채 공급 확대'라는 수급 이슈가 전면 부상했다.
ALM(자산부채관리) 관리가 중요해 장기물 주 수요자층인 보험사와 연기금 뿐만 아니라 회사채를 발행하는 발행사 주관사, 개인투자자 등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현재 이재명 정부의 추경 규모에 주목하고 있다. 당분간은 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커,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기존 2.75%에서 2.5%로 25bp(1bp=0.01%포인트) 인하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하반기 한 차례 정도 추가 금리 인하가 예상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12일 창립 제75주년 기념식에서 "경기부양 정책이 시급해졌다"며 "당분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채권시장은 전통적인 금리 인하 국면과는 정 반대로 반응했다. 통상 기준금리가 인하하면 국고채 금리도 따라서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0년물 이상 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가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국고채 30년 만기 금리는 연 2.746%로 마감했는데, 이는 약 한 달 전인 5월 초 2.474% 대비 27bp 가까이 오른 수치다. 이는 같은 기간 3년 만기 금리가 약 14bp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높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인 4일에는 30년물 금리가 연 2.781%를 기록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장기물 금리가 이처럼 급등세를 보이는 데는 이재명 정부의 재정정책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13조8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에 이어 30조원 이상 규모의 2차 추경을 예고한 바 있다. 이에 추경에 따른 국채 발행 확대가 장기물 공급 증가로 이어져 현재 채권 시장이 이러한 구조를 선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기물 금리가 오르면서, 전통적인 장기 국채 수요자인 보험사들도 ALM 전략에 신중한 모양새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듀레이션 갭을 줄이기 위해 30년물 등 장기 채권을 대거 매입해왔지만, 올 들어 장기물 매입 열기가 다소 주춤해졌다. 실제로 30년 만기 국고채 경쟁입찰 경쟁률은 올해 2월 2.7:1 수준이었지만 4월 2.4:1, 6월에는 2.1:1 수준까지 낮아지며 지속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기금 역시 장기물의 주요 매수 주체이지만, 적극적 매입보다는 선별적 진입 전략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전략상 듀레이션을 유지할 필요는 있지만, 대선 직후와 같은 변동성 구간에서는 일부 현금 비중을 늘리며 타이밍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국채 입찰 결과를 보면서 시장이 과민반응하는 경우 매수에 나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고채 장기금리 상승의 직접적인 타격은 회사채 발행사에 돌아가고 있다. 발행금리는 국고채 금리에 스프레드를 더해 결정되는데, 장기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 회사채 발행 금리도 높아지는 까닭이다. 실제로 신용평가 5개사 평균 AAA 등급 무보증 공모 회사채의 금리는 11일 기준 3.416%로 지난달 초 3.151% 대비 26bp 가량 상승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채권 매수세도 주춤해졌다. 지난 3월 3조9000억원을 웃돌던 채권 순매수액이 4월과 5월 각각 2조583억원과 2조5235억원으로 줄더니, 이달 들어서는 약 6000억원 정도까지 줄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이달엔 순매수액이 1조원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인 추경 규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은 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가 추가로 상승하며 변동성을 키울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현재 장기 국고채가 저가 매수 영역에 진입한 가운데, 2차 추경의 절대적인 규모 보다는 국고채 발행 비중이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 추경의 실제 규모 확인 전까지 불안한 투자심리가 잔존할 수 있지만, 금리 레벨 측면에서 장기 국고채는 저가 매수 영역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라며 "2008년 이후 편성된 추경의 평균 국고채 발행 비중인 77%를 감안하면, 올해 2차 추경 규모를 20조원으로 가정할 경우 대략 15조원을 국고채 발행으로 충당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