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군출신 아닌 전문경영인 와야한다지만
KAI 매출 절반이 국내 사업서…군 출신이 현실적?
민영화 논의도 반복되지만 아직 시기상조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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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사의를 밝히며 차기 대표 인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너 없는 구조로 인해 장기 전략 수립이 어려웠던 만큼 군 출신이 아닌 '전문경영인'이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아직까지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KAI 매출의 절반 이상이 국내 군 수요에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할 때 안정적 영업 기반을 위해선 군 출신 인사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KAI는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이 26.41%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반공기업으로, 정권 교체 시기에 따라 대표이사가 교체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이번에도 이재명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강 사장이 사의를 밝히자 후임 대표 인사에 정치적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여권 핵심 인사 또는 이재명 캠프 출신의 인사가 후임으로 낙점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KAI를 둘러싼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너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인사를 낙점하고 3~5년 단위로 대표가 교체되는 구조 자체가 지속 가능한 전략 경영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한 방위산업 전문위원은 "내부에서도 임기에 맞춰 단기 실적을 내는 데 급급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장기 투자가 필요한 항공기 개발 사업에는 맞지 않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실무진 입장에선 열심히 한다고 차기 대표가 그 성과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 동기 부여가 어렵다"며 "대표가 자신의 업적을 부각하기 위해 보여주기식 행사를 반복하는 데 대해서도 내부에선 피로감을 느낀다. 이런 행사들도 모두 비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방산업계 일각에선 군 출신이 아닌 민간 경영 경험을 갖춘 전문경영인이 KAI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산 무기 체계가 고도화되고 민간 수출도 점차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을 함께 고려한 '경영 판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방산업 전문가는 "무기는 요구 조건만 맞춰 만들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중요한 건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경영 역량"이라며 "이제는 전문경영인이 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시기상조라는 평가다. KAI 매출의 절반 이상이 국내 군 수요에서 나오고 있어 정부 조달 예산에 의존하는 구조를 감안할 때 군 출신 인사가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과 협조를 이끌어내기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KAI는 FA-50 경공격기, 수리온 헬기, KF-21 전투기 등 다수의 국산 무기 체계를 개발 및 양산 중이며 이들 대부분이 정부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방위산업 연구원은 "아직까지 KAI는 주요 매출이 정부 수요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대정부 협력 역량을 고려해도 오히려 군 출신 인사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KAI의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한 방안으로 민영화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돼 왔다. 하지만 아직까진 마땅한 인수후보가 없는 데다, 회사의 수익 변동성이 크고 현금흐름 기반이 약해 매각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인수 후보로 한화 등이 언급 됐지만 한화의 경우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한 이후 KAI까지 품기엔 부담이 있단 분석이다. 또 방산업계에선 한화가 '육·해·공' 무기 체계를 모두 쥐게 될 경우 정부의 조달력과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앞선 연구원은 "KAI까지 민영화돼 한화가 가져가게 되면 정부가 오히려 기업 눈치를 봐야 하는 그림이 된다"며 "지금은 정부가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정부가 원하는 예산 내에서 무기를 조달하고 기업들도 협력하지만 하나의 기업에 의존하는 부분이 커질수록 정부의 바잉 파워는 줄 수밖에 없다. 방산 조달의 균형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진 않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KAI 민영화는 해외 시장 비중이 커졌을 때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현재로선 국내 군 수요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시기상조"라며 "민영화가 가능하려면 수익이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구조가 전제돼야 하는데 현재 수준의 민간 매출만으로는 자생이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결국 KAI 차기 대표 인선은 정치적 무게와 경영 실무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방산 수출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수출 확대와 기술 고도화를 동시에 이끌 수 있는 인물이 요구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AI의 지속 성장을 위해선 어떤 출신이 오든 실적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을 갖고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와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