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AAA급' 신용 보강…산은 발행주선·채권인수
"일정 수준 유동성 보장돼야…정책 홍보·기업 인식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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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견기업을 위한 ‘QIB(적격기관투자자·Qualified Institutional Buyers) 방식 회사채 프로그램’이 제도 재정비를 거쳤다. 신용보증기금이 최대 80%까지 물량을 보증해 AAA급 우량 신용도로 발행이 이뤄지며, 산업은행이 나머지 무보증 물량을 인수하는 구조다. 중견기업의 향후 공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건데, 시장이 거래 유동성을 확보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택배회사인 로젠과 스테인리스 강판 전문사 디케이씨가 각각 800억원, 200억원 총 1000억원 규모로 QIB 방식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후 4~5곳의 중견기업들이 내달 2차 발행을 목표로 심사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QIB 제도는 지난 2012년 5월 도입됐다. 중소 벤처기업과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서 쉽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발행기업의 인지도 부족과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으로 인해 흥행에 실패했다. 발행사와 투자자 모두가 시장에 뛰어들 유인이 없자 유명무실해졌다.
QIB 제도는 공모와 사모의 중간 성격을 띤다. 공시의무가 일부 면제됐으며 사모채와 달리 전매제한 조치도 없다. 규제담당기관도 공모채는 금융감독원이지만 QIB 시장은 금융투자협회가 맡고 있다.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공모 회사채 발행 실적이 없는 우량 중견기업의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를 열어준다. 이를 위해 한국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3자 협약을 맺었다. 각 기관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향후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자립 가능성이 있는 우량 중견기업을 추천하고, 산은의 발행주선·채권인수, 신보의 신용보강이 이뤄진다. 신보는 발행물량의 최대 80%까지 전액보증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1차 발행에서는 50%를 신보가 보증해 시장 투자자에 매각하고, 나머지 50%를 산은이 인수했다.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과 비교했을 때 유동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 금융비용도 130bp(1bp=0.01%포인트)가량 저렴하다. P-CBO가 특수목적회사(SPC) 명의로 발행되는 것과 달리 QIB는 기업 이름으로 직접 채권 발행이 가능하다. 또 만기가 1년 이내로 짧은 은행권 대출과 비교했을 때 QIB 제도는 2~3년 만기물로 조달이 가능해 만기 구조 장기화로 자금운영 측면에서 보다 여유를 가지게 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공모채 시장은 중견기업의 접근이 어렵고 대기업 위주로 발행이 이뤄진다"며 "QIB를 통해 중견기업이 직접 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을 할 수 있으며, 기업 명의로 직접 발행한 트랙레코드가 쌓여서 결국 공모채 시장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도 정착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QIB 시장이 활성화되고 유지되려면 일정 수준의 유동성이 보장돼야 한다. 적격기관투자자로는 은행, 보험사, 연기금을 비롯해 저축은행중앙회, 새마을금고연합회, 신협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등이 포함되는데, 이들 사이에서 활발히 거래가 되려면 어느 정도 발행 규모가 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산은 내부에서도 BBB급 비우량채 회사채 발행잔액인 5조~6조원 규모까지 발행 규모를 늘리려는 계획이다.
기업들에 QIB 시장이 새로운 자금 조달처라는 인식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발행 금리에서 은행대출보다 메리트가 있어 관심을 가지는 기업들이 많은데, 재무최고책임자(CFO)와 의견 일치가 있더라도 오너가 반대해 무산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정책 홍보와 기업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또 신용평가사들의 신용평가방법론은 대기업 위주로 이뤄져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평가방법론은 기업들의 규모가 클수록 유리한 구조인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중견기업은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견기업은 공모채 조달 이력이 없어 부도율 등 데이터가 불충분한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 신용평가 시스템에 중견기업을 끼워 맞춰서 등급을 매기다 보니 모순되는 부분이 있고, 등급 자체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현재 제도에서는 최종적으로 신보 보증을 씌워 AAA급으로 나오는데, 결국 중견기업이 외부의 신용 보강 없이 스스로의 등급으로 회사채 시장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