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예측 가능한 사고에 책임을 엄격하게 물을것"
"정권 초기부터 본보기 될라" 건설·제조사 초긴장
올해엔 '긴 장마'에 '폭염'까지 예상
만반의 안전 대책에도 발생하는 사고에 불똥튈까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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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새정부 출범 초기부터 재계의 긴장도는 극에 달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정부'로 평가 받는 이재명 정부 하에서 기업들은 국정 기조에 어긋나는 행태로 자칫 눈밖에 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실제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는 기업 경영인보단 주주 또는 노동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상법개정안은 새정부 출범 일주일도 안돼 다시 발의됐고,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방점이 찍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역시 국회 논의가 한창이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즉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자 또는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안은 현 정부의 산물이 아니지만 기업 경영인들을 다시금 불안에 떨게 하는 법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 안전치안점검회의를 개최해 "예측 가능한 사고가 무관심 또는 방치로 벌어질 경우 사후 책임을 아주 엄격하게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권의 힘이 가장 세다는 정부 출범 초기 '아주 엄격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진짜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건설, 조선, 석유화학 등 중후장대 현장직 노동자들이 많은 기업들 사이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 간 광주 학동 철거 현장, 광주 화정동 신축 건설현장 그리고 세종-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 등 주요 건설사들엔 대형 사망사고가 발생한 전례가 있다. 조심 또 조심해도 언제든 사고에 노출돼 있다는 불안감이 상존해 있는 건 사실이다.
장마철과 그 이후에 찾아오는 폭염엔 건설현장에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올해는 유독 긴 장마에 많은 강수가 예상되고 있다.
토목, 주택 공사의 시작인 터파기 작업 단계의 현장은 특히 장마철을 주의해야 한다. 배수시설을 아무리 잘 갖춰놓는다 하더라도 강과 하천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까진 예측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자칫 민가 피해가 발생한다면, 인근 사업장이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혹서기도 마찬가지다. 폭염 속에서 근로자가 의식을 잃거나 부주의에 인한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부 시공사들은 근로자들의 휴게시간을 보장하거나 차양막을 설치하고 냉방 장구를 보급하는 등 안전대책을 마련했으나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는 시기다.
대형 건설사 상당수는 근로자들의 '작업 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사고의 종류와 상관없이 작업자가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 그 즉시 누구든 사업장의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이다. 국내 한 대형건설사는 주변 눈치(?)를 보지 않도록 작업중지권을 사용한 근로자에게 상품권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같은 예방 대책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인명 사고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고 관련자들은 입을 모은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또는 고령 근로자의 건강문제로 인한 사고, 개인적인 일탈로 발생한 사고 등 현장 책임자와 경영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발생한 사고들은 현실적으로 손 쓸 도리가 없단 의견도 있다.
국내 한 대형 건설사 임원급 관계자는 "대형사들 대부분은 안전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 놓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인명사고는 거의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제까지 대형건설사 또는 제조사들의 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 3월까지 법원이 선고한 판결 37건 가운데 유죄선고가 내려진 비율은 약 89.2%, 유죄판결 중 징역형 실형은 15%(5건)에 달했다. 형사처벌을 받은 대부분의 기업들은 안전, 보건관리 체계 구축에 한계가 있는 중소·중견 기업에 해당했다.
법적 대응 여력이 충분한 대형사들은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영업이 정지 되거나, 오너 또는 최고경영진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관할 행정기관의 행정 처분에 불복해 가처분을 제기하고, 행정처분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수년간 소송을 이어가며 경영 활동을 이어왔다. 다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현장 사고에 엄격한 대응을 예고한 현재는 분위기가 다소 바뀐 모습이다. 건설사, 제조기업을 망라하고 현 정부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1호만은 되진 말자'란 의지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