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덕 의원 '디지털자산 기본법' 발의 등
여당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에 속도 붙자
스테이블코인 부정적이었던 은행도 태도 바꿔
'더 늦으면 직격탄' 발행 주도권 잡기에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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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은행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은행들은 앞서 가상자산에 보수적으로 접근해 왔지만 여당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민간 장벽을 낮추는 내용의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발의되는 등 속도가 빨라지자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흐름에 동참하려는 분위기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허용과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대표발의하면서 금융권이 들썩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자기자본 요건이 5억원 이상일 경우 누구든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되자 핀테크 등 비은행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권도 내부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수탁(커스터디) 영역에서 발 빠르게 대응해왔지만, 발행까지 직접 나선 사례는 없다. 예컨대 하나은행은 과거 '비트고(Bitgo)'와 디지털 자산 수탁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일찍부터 시장에 관심을 보여왔지만, 스테이블코인 자체 발행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해왔다.
현재 은행들은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를 중심으로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 등 6곳 시중은행 및 케이뱅크와 함께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해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 논의 단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은행들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발행 관련 실질적인 논의보다는 가능성 검토와 내부 보고 수준에 머물러 있는 단계로 사실상 첫발을 떼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은행권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TF를 구성해 전문 인력들을 배치해 논의하기보다는 기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 관련 사업을 검토하거나 가상자산 거래소를 담당했던 팀이 해당 사업을 맡아 진행 중인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통적으로 은행들이 암호화폐 및 디지털 자산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디지털 자산 정책에 속도를 내고 관련 법제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은행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초까지만 해도 은행권에서 코인 관련해선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라며 "CEO들이 오너가 아니라는 특성상 각 은행의 개별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사업이 아니라면 추진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고, 은행연합회 또한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은행 전반으로 이를 이끌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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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검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관련 진행 속도나 상황을 볼 때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은행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기본적인 역할은 예금을 기반으로 대출 및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면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신용중개 기능에 있는데, 해외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은행 예금보다 높은 4%~6% 수준의 이자를 지급하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은행 예금이 더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은행의 수익원 중 하나인 해외송금 등의 수수료 또한 완전히 빼앗길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해 해외로 송금할 경우 환전 수수료나 결제 과정에서 지불하는 수수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은행을 이용할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기존 프로세스에 따르면 금융위 법안이 나온 뒤 이를 분석해서 TF를 만들고 컨설팅 펌이나 법무법인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는 게 맞다"라며 "그러나 최근 은행들은 여태껏 그랬듯 가만히 있다가 제도나 법안이 나온 뒤에 대응하면 늦는다고 보고 목소리를 내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특히 민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 기본법 내용처럼 발행 요건이 5억원 이상으로 완화되면 핀테크 등 비은행 사업자들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은행이 손을 놓고 있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만약 은행이 하지 않으면 비은행이 주도권을 쥐게 될 거고, 은행 입장에선 비즈니스 한 축을 뺏기게 되는 것"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리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자본 여력과 지급준비금 등에서 갖는 안정성이 타 사업자에 비해 뚜렷하기 때문에, 규제가 정비되면 은행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라는 판단도 따른다. 실제 은행들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라이선스가 도입될 경우 은행이 이를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도 단순 자본금 요건만을 갖고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내줄 경우 뱅크런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비은행사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경우 은행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여지도 있는 셈이다.
금융권 다른 한 관계자는 "은행들은 3~4중의 안전장치를 조건으로 화폐에 준하는 예금을 허용받고 지급결제 기능을 수행하는데,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지급준비금을 유지하라는 조건밖에 없다"라며 "만약 지급준비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1:1로 환전이 안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 코인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이 실생활에서 지급결제 수단으로 쓰이게 되면 해당 영역에서 발생한 부실이 전체 지급 결제 시스템 부실로 전이가 된다"라며 "은행에 준하는 정도의 안전장치 없이 5억원만 가지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하게 된다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시중은행들은 먼저 협회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관련 법안 통과 등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공동 발행 논의 과정에서 상당수 은행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상용화되면 시장은 출렁이더라도 은행 부서 단에서는 관련 사업 점유율이 좀 줄어든다 뿐이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라며 "은행에서도 업계와 시장에 대한 고민이 같이 돼야 스테이블코인 관련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공동보다는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서자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업계 전반에서는 관련 제도 및 기술 인프라가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코인을 어떻게 유통할 것인지,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핀테크 업체나 가상자산 사업자들처럼 시장이 뜨고 있으니 접근해 보자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명분 싸움도 중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