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골프존카운티 매각 희망가도 축소
'홀당 110억' 중부CC도 클로징 불투명
지방은 '반값 세일'…공매 나서도 텅텅
88CC에 쏠리는 눈…'빅네임'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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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골프장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수도권 주요 골프장의 연 매출은 150억~200억원 수준인데, 이 가운데 70%가 법인카드 매출에서 나온다. 그린피는 물론 부대시설 이용료, 프로숍 매출, 카트비 등 부수입의 대부분을 법카 고객들이 차지했던 것이다. 주요 대기업들이 잇달아 '골프 자제령'을 내리면서 골프장들의 수익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올해 들어 주요 대기업들의 지출 통제가 본격화되면서 골프 접대가 대거 축소되는 분위기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2월부터 임원들을 대상으로 골프 자제령을 내렸다. 대관 이외에는 골프장을 찾는 임원이 거의 없다는 평가다. SK텔레콤, 삼성전자 등도 상무급 임원의 법인카드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외제차 지원을 없애는 등 비용 통제에 돌입했다. 최근 LG그룹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골프 지출 통제 강화에 나섰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운영비의 70%가 법카 매출인데 대기업들이 골프 금지령을 내리니 당연히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골프장 매물이 많아진 것도 시장이 '꼭지'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일반 매물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시장의 시선은 하나의 자산으로 향하고 있다. 국가보훈부가 보유한 '88컨트리클럽'(88CC)이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36홀 규모의 회원제 골프장으로, 서울 근교에서 이 정도 평지와 접근성을 갖춘 자산은 사실상 유일하다는 평가다. 과거 88CC는 17년 전 거래 당시에도 5000억원 규모의 부동산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지금은 그 가치가 더 올라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88CC 매각을 통해 기금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비록 아직 당론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향후에도 매각 압박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편익 비교 분석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며, 시장에서는 매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 대형 사모펀드(PEF)업계 관계자는 "88CC는 부동산PF 개발 관점에서 보면 조 단위 매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며 "국내 대형 운용사뿐 아니라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사모펀드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딜"이라고 말했다.
88CC라는 '슈퍼딜'에 관심이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골프장 매물들은 외면받고 있다. 국내 최대 골프장 운영사인 골프존카운티마저 매각 절차에 돌입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골프존카운티는 연 매출 3000억원에 육박하지만, 영업이익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에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의 희망가는 당초 2조원대에서 최근 1조 중반대까지 하향 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반값 세일' 신세가 된 골프장들도 있다. 우리금융그룹이 CET1 비율 제고 압박으로 매각을 검토 중인 안성 파인크리크CC는 중부CC의 절반 수준에서 거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도 춘천의 파가니카CC는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해 작년 홀당 80억원에서 올해 70억원대로 '할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유명 골프장으로 손꼽히는 우정힐스CC는 홀당 100억원 이상의 가격이 거론되지만, 코오롱그룹 측이 '최후의 보루'로 여기며 매각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더 심각한 곳은 공매에 부쳐진 골프장들이다. 전남 영암의 코스모스링스CC는 최저 매각가가 2060억원에서 시작해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1000억원 이하로 하락했다. 국내 최초 활주로형 골프장이라는 특색에도 불구하고 브릿지론 600억원을 감당하지 못해 급매에 나섰다. 같은 영암군의 골프존카운티 영암45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요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45홀 대중제 규모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골프장이지만 지방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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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그럼에도 골프장을 사려는 곳들은 있다. 대표적으로 더시에나그룹이 있다. 이 회사는 작년 세라지오GC를 홀당 100억원 이상에 인수했고, 최근엔 중부CC를 홀당 110억원에 낙점받으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두 곳 모두 전략적투자자(SI)들로부터 '비싸다'는 평가를 받던 곳이었다.
더시에나그룹은 제주도와 삼척에 하이엔드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수도권 명문 골프장들을 연계하는 일본식 골프장 그룹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자금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더시에나그룹은 세라지오GC 인수 잔금도 아직 완납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룹의 핵심 자금원으로 여겨지는 삼척 하이엔드 리조트 분양사업도 순탄치 않다. 안젤리나 졸리를 전면에 내세운 화려한 마케팅에 수백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의 냉기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 중론이다.
중부CC 인수전에는 LX그룹, 이수그룹, 삼천리 등 자금력이 풍부한 SI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결국 더시에나그룹이 승기를 잡았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중부CC 인수에만 약 2000억원이 필요한데, 에쿼티만 기본 1000억원은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기존 프로젝트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대형 딜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골프장 거래가 어려운 이유는 금융 구조에도 있다. 골프장 딜은 금융사의 인수금융을 쓰기 어렵다. 결국 부동산 담보대출인데, 최대 LTV(담보인정비율)가 50% 수준에 불과하다. 중부CC처럼 홀당 110억원, 총 2000억원 규모 거래라면 에쿼티만 1000억원은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현재 골프장들의 업사이드가 전혀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반면 LX그룹, 삼천리그룹, 이수그룹 등 오너들의 '트로피 에셋'에 대한 관심은 여전해, 앞으로도 오너 딜로 근근이 거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선 투자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 이후 부동산 대출 규제가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어 골프장 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이나 운용 규모가 큰 사모펀드가 아니면 사실상 진성 인수자라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 골프장의 전철을 떠올리기도 한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 이후 골프장 평균 거래가격이 수도권 기준 홀당 10억~15억원 수준까지 내려앉았다"며 "한국은 아직 지방 포함 평균 홀당 80억~90억원으로 형성돼 있는데, 현재와 같은 양극화와 수요 축소 흐름이 지속되면 결국 합리적 수준으로 가격이 재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카 없는 골프장'의 생존전략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지금은 홀당 얼마냐보단 '누가 진짜로 살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장이 됐다.